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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2:00:29]  HIT : 21  

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

윤명철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511/ 156/ 5,000

 

 

저자 윤명철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고구려사와 해양사이며, 광개토태왕을 통해 21세기의 고구리즘(gogurism)’의 실현을 꿈꾸고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해양문화연구소장, 고구려연구회 이사, <지구문학> 편집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탐험가이자 시인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한민족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장보고의 나라, 고구려는 우리의 미래다등이 있다.

 

Short Summary

21세기 우리 민족의 발전 모델로 가장 적합한 역사생명체인 고구려. 그 고구려의 가장 튼튼한 초석을 놓고 대들보를 올린 우리 시대 최고의 리더는 광개토태왕이다. 이 책에서는 광개토태왕을 단순히 영토를 확장한 정복군주로서가 아니라, 세계질서를 능동적으로 재편하고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태왕이 꿈꾸었던 고구려적 세계와 이를 실천해 가는 국가발전전략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인물 모델의 또 하나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를 관념이나 지식이 아닌 삶 그 자체로,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포한 살아 있는 현실 그 자체로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와 연관시키고 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의 활동을 분야별로 유형화하여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언어와 상황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적 모델로 삼고, 21세기의 우리가 당면한 국가적, 현실적 과제들의 한계와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차례

프롤로그 : 한고려국과 중국의 충돌

1. 21세기 역할모델, 광개토태왕

2. 혼돈의 동아시아와 광개토태왕의 등장

3. 정치외교의 중핵(core) : 균형과 조정

4. 군사력 : 정책화와 수륙양면작전

5. 경제 물류의 거점(hub) : 집산과 중개무역

6. 문명의 터전 IC : 융합과 재창조

7. 고구려의 중핵조정역할이 지닌 21세기적 의미

에필로그 : 21세기 통일한국, 혹은 한고려국의 꿈

 

 

 

 

광개토태왕과 한고려의 꿈

윤명철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 200511/ 156/ 5,000

 

 

1. 21세기 역할모델, 광개토태왕

 

개방과 만남, 변화의 중심에 선 한국 / 왜 광개토태왕인가

강소국인 우리 민족이 생존하고 발전하려고 할 때, 실제적인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동아지중해(East Asian Mediterranean Sea) 중핵조정역할인데, 이를 실현시켜 성공한 나라가 고구려이고, 그 틀을 만든 사람이 광개토태왕이다. 참고로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의 상황은, 21세기의 상황 -세계질서와 동아시아질서가 급변- 과 거의 흡사한데, 광개토태왕은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해결 방법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태왕의 삶에 관하여 알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생생한 자료는, 붕어한 지 2년 후인 414년에 아들인 장수대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릉비인데, 이를 보면 시호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18세에 즉위하였고, 연호가 영락(永樂)”이라고 하였다. 또한 은택은 마치 황천과 같았고, 위무(威武)가 널리 사해(四海)에 떨쳤다. []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아가게 했다.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들도 많아지고, 오곡이 잘 익었다.”라고 하여 태왕이 국내외적으로 정치를 잘한 성군이었음을 알렸다. 하늘은 우리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아, 39세에 나라를 버리고 돌아가셨도다.”라고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려 비를 세운다고 하였다.

 

미리 말하자면, 태왕은 고구려를 그 시대 세계의 중심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할 목적으로 다양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였고, 성공시켰던 위대한 정치가였다. 이제부터 태왕이 살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벌인 활동들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의 인품, 능력, 세계관, 그리고 그가 꿈꾸었던 고구려적인 세계와 이를 실천해 가는 국가발전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혼돈의 동아시아와 광개토태왕의 등장

 

혼돈에 빠진 동아시아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391년 무렵은, 국제질서가 혼란스러웠던 데다가, 민심이 흉흉하고 미래가 불확실하여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참고로 중국대륙에서는 위를 이어 진이 북부지역을 통일하였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바로 516국 시대가 전개되었는데, 북부지역에서 혼란스럽게 명멸하는 각국들은 나름대로 살아가기 위한 방도를 찾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쪽으로 도망간 동진과 외교 교섭을 하여 실리와 명분을 얻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연나라와 동진은 남북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었고, 고구려와 연은 국경을 마주한 채 일촉즉발의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고구려와 동진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우호구도였지만, 연 및 후조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복잡 미묘하게 경쟁 구도를 연출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은 우호협력 내지 경쟁관계이지만, 과거 청산과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국은 북한과 적대관계에 있으나 북한의 혈맹인 중국과는 우호적인데, 물론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기본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이고, 앞으로도 우리와 갈등 내지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많다.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갈등 혹은 경쟁관계인데, 한시적으로 우호관계를 맺고 있지만 연해주 영유권과 두만강 하구를 놓고 갈등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

 

이 외에도 일본과 러시아, 일본과 북한, 북한과 미국, 중국과 미국 등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중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4세기경에도 아수라장과 불가시성 속에서 고도의 외교행위들이, 그것도 비밀리에 행해졌는데, 고구려 또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기에, 현재 우리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부단하게 고도의 세련된 외교행각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군사행동을 실천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시아세계가 이러한 혼란과 불확정성, 무질서로 차 있었지만, 고구려에게는 실로 오랜만에 실지(失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였다. 즉 다른 유목 종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요하(遼河)를 넘어 중원을 점령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광개토태왕이 즉위하기 전, 고구려는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전사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었고, 사회 전체에 분노와 허탈감, 슬픔이 채 가시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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