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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1:56:47]  HIT : 23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

클레이본 카슨 편저/이순희 옮김

바다출판사/20003/496/15,000

 

편 자 클레이본 카슨

클레이본 카슨은 스탠포드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전문가다. 투쟁 속에서 - SNCC60년대 흑인들의 각성』『말콤 엑스 - FBI 파일등을 발간했고, 최근작으로 킹 목사의 설교 모음집 한밤중의 노크소리가 있다. 그가 마틴 루터 킹을 본 것은 고용과 자유쟁취를 위한 1963년 워싱턴 행진의 연사로 연단에 섰을 때였다. 처음 시민운동 시위에 뛰어든 열아홉의 대학생은 20년 후 스탠포드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됐고, 킹 목사의 부인인 코레타 스콧 킹의 부탁으로 킹 목사 문헌편집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됐다. 카슨은 킹 목사를 연사와 청중으로 먼발치에서 한번 봤을 뿐 한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킹 목사를 문헌편집을 하면서 점차 알아갔다. 카슨은 스스로 자신의 학문활동에 킹 목사 연구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자전적 기록은 물론, 생전에 남긴 자투리 글, 기록된 발언, 녹취된 발언까지 모아 킹 자신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스스로 쓴 것이 아닌 데도 자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노력에 따른 것이다.

 

역 자 이순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다이애나의 진실』『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113가지 교육 법칙등이 있다.

 

Short Summary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흑백분리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 부모님 밑에서 킹 목사는 어릴 때부터 흑인들에 대한 차별대우와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성직자보다 모태신앙이었던 기독교에 바탕한 사회개혁을 꿈꾸며, 예수의 사랑의 가르침에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접합시켰다. 비폭력주의란 단순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저항은 하되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백인 기득권층과 정부의 공권력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던 흑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킹 목사는 이런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민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억압받고 멸시당하며 가난에 찌든 형제자매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호소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던 탁월한 웅변가, 자신의 영달이나 안락을 구하지 않고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운동을 지휘했던 진정한 투사, 모두가 주저할 때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홀로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말년에 새로 빈민운동을 계획했던 마틴 루터 킹. 그러나 그는 1968년 괴한의 총탄을 맞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차 례

1. 어린 시절

2. 모어하우스대학

3. 크로저 신학교

4. 보스턴대학

5. 내 아내 코레타

6. 덱스터 애브뉴 침례교회

7. 몽고메리 운동

8. 필사적인 저항

9. 몽고메리의 승리

10. 확산되는 투쟁

11. 새로운 국가의 탄생

12. 죽음의 위협

13. 비폭력 운동의 산실, 인도 순례

14. 연좌운동

15. 애틀랜타에서의 체포와 대통령 선거

16. 올버니 운동

17. 버밍햄 운동

18. 버밍햄 교도소에서 온 편지

19. 드디어 자유다!

20. 워싱턴 행진

21. 환상의 죽음

22. 세인트 오거스틴

23. 미시시피의 도전

24. 노벨 평화상

25. 말콤 엑스

26. 셀머 투쟁

27. 와츠

28. 시카고 운동

29. 블랙 파워

30. 베트남 전쟁

31. 빈민운동

32. 못 다 이룬 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마틴 루터 킹 자서전 -

클레이본 카슨 편저/이순희 옮김

바다출판사/20003/496/15,000

 

1. 어린 시절

나는 대공황이 시작될 무렵인 1920년대 말, 애틀란타 시 5번가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중산층에 속했다. 온화한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있었다. 흑백분리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부모님은 그것이 자연적인 질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일 뿐이니 이런 제도에 순응해서도 안 되고, 열등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너는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난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5살 때였는데, 교회는 제2의 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소년기가 끝날 무렵 나는 정신적 성장의 계기를 맞게 됐다. 한 가지 사건은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나는 외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영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됐다. 내게 충격을 준 또 한 가지 사건은 여섯 살 때부터 친하게 지낸 백인 친구와의 문제였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놀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아버지가 이제부터는 너랑 같이 놀지 말래.”하며 멀어진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난생 처음 인종문제를 확인하게 됐다. 어린 시절의 치욕스런 기억들은 흑백분리제도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게 했다. 또한 주위에 가난한 흑인들을 통해 인종차별 뒤에는 경제적 차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난한 백인들 역시 경제적인 차별을 당하며 착취당한다는 걸 알고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평등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2. 모어하우스대학

나는 열 다섯 살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졸업한 모어하우스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많은 토론을 할 수 있었는데, 특히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소로우의 책을 통해 비폭력 저항을 처음 접했는데, 선에 협조하는 것뿐 아니라 사악한 제도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학에 들어간 직후 인종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간 협의회에 참여했다. 인류에 대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성직자가 될 것인지 많이 갈등했다. 성서연구 강좌를 들으며 차차 갈등이 해소되고, 모어하우스 대학장인 메이즈 박사와 조지 켈시 교수,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으로 성직자의 길을 결심했다.

 

3. 크로저 신학교

성직자의 길을 결정하고, 1948년 스무살의 나이로 펜실바니아 주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부터 사회악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위대한 사회철학자들의 저서를 섭렵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홉스, 벤덤, , 로크 등을 탐독했다. 1949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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