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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1:54:58]  HIT : 17  

내 인생에 타협은 없다

- IBM 신화를 만든 왓슨의 황소고집 -

케빈 매이니 지음ㆍ 김기영 감역

21세기북스 / 20051/ 616/ 22,000

 

 

저자 케빈 매이니(Kevin Maney)

<USA 투데이>의 칼럼니스트.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쳐 비즈니스 저널리즘 업계에서 최고의 칼럼니스트로 뽑혔으며, Marketing Computers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로 네 차례나 선정하기도 했다. <비즈니스위크>의 베스트셀러 Megamedia Shakeout의 저자이기도 하다.

 

감수 번역 김기영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MBA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경영대학원장, 연세대학교 부총장, 한국경영학회 회장, 미국 Decision Sciences Institute 부회장(평생 Fellow)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석좌교수),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 경영대학 특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생산관리』『계량의사 결정론』『생산 전략』『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재발굴등이 있다.

 

Short Summary

이 책은 'USA 투데이' 칼럼리스트인 저자가 IBM이 최초로 독점 공개한 방대한 자료(회의기록, 편지, 전보, 내부 메모, 그 외 개인적인 자료 등)를 바탕으로 IBM의 창업자인 토머스 J. 왓슨에 관하여 사실적으로 그린 전기문이다.

 

뉴욕 주의 시골에서 태어난 왓슨은 1895년 금전등록기 제조회사에 들어가 서른여섯 살 때 지역 책임자가 된다. 그러나 1912년 셔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서 1914C-T-R로 회사를 옮긴다. 왓슨은 이 회사를 IBM으로 이름을 바꾸고, '마크I' '701' 등의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그만의 독특하고 거대한 왕국을 만들어 간다.

 

저자는 왓슨이 가난에서 출발하여 IBM이라는 세계 일류의 첨단기업을 설립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까지 끝없는 야망과 도전, 치열한 투쟁으로 점철된 왓슨의 삶과 그가 일구어낸 IBM만의 독특한 문화 탄생의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몰락의 길을 걷던 IBM이 루 거스너에 의해 회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 창업자인 왓슨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미국 대공황 및 제 2차 세계대전 등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IBM이 컴퓨터산업의 강자로 우뚝 서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차례

1장 매버릭 탄생하다

2장 플린트와 만나다

3C-T-R이라는 이름의 회사

4장 젖먹이 IBM을 기르다

5장 도전과 행운

6장 친구, 영웅 그리고 예스맨들

7장 적 그리고 착각

8장 왕과 성

9장 왓슨 주니어

10장 왓슨의 전쟁

11장 노인의 새로운 전자 시대

12장 세계 정복

13장 매버릭 그리고 그의 인간성

14장 시간은 흐르고

 

내 인생에 타협은 없다

- IBM 신화를 만든 왓슨의 황소고집 -

케빈 매이니 지음ㆍ 김기영 감역

21세기북스/20051/616/22,000

 

1장 매버릭 탄생하다

1903년 내셔널 캐시 레지스터 컴퍼니(NCR)의 패터슨과 2인자인 채머스(Hugh Chalmers)가 왓슨을 데이턴 시로 불러들여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왓슨에게 NCR 자회사로 중고 금전등록기 회사를 세워줄 것을 제안했다. 목적은 채머스와 패터슨이 설명한 대로 중고 금전등록기 시장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당시 중고 금전등록기가 NCR의 신제품 수익을 갉아먹고 있어 회사에 타격을 입히고 있었고 금전등록기 시장에 대한 NCR사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왓슨은 NCR의 자금으로 세컨드 핸드 캐시 레지스터 컴퍼니라는 위장 회사를설립했다. 왓슨은 NCR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했다. 그리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자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08년에는 NCR 본사에서 영업부 부책임자라는 유망한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패터슨은 1910년에는 왓슨을 영업부 부책임자에서 영업부 책임자로 승진시킴으로써 200개가 넘는 지점에 900명 이상의 영업사원을 다루는 임무를 그에게 맡겼다. 영업사원들은 왓슨을 위해 충성스럽게 일했다. 판매실적이 좋고 영업사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왓슨은 NCR의 스타가 되었다. 왓슨은 1912년까지 데이턴에서 중고 금전등록기 사업을 운영했고 NCR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12222일 아침, 데이턴 시에 사는 사람들은 신문을 펼쳤을 때 모두 놀랐다. 데이턴 데일리 뉴스제일 첫 면 헤드라인에 “NCR 직원 연방 대배심에 기소되다.” 신시내티에서는 뉴스 첫 단락에 데이턴 시 소재 내셔널 캐시 트러스트 컴퍼니 임직원 30명이 셔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이곳 연방 대배심에 기소되었다.”라고 기술했다. 두 단락 아래에는 기소된 사람들의 명단이 있었다. 명단의 제일 첫 번째는 패터슨이었고 몇 개 이름이 지난 다음에는 왓슨이 있었다.

 

정부는 30명의 피고인을 세 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첫 번째 기소내용은 공정거래를 위반하여 NCR이 금전등록기 업계에서 다른 경쟁업체들을 몰아냈다는 것이다. NCR은 경쟁업체 직원들에게 뇌물을 먹였고 운송 회사와 통신 회사에도 뇌물을 써서 주문이 누락되게 하거나 운송 중 제품에 손상을 입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소장에 따르면 또한 NCR에서는 경쟁업체 신용에 손상을 입히고 경쟁 제품을 중상모략한 혐의가 있다고 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기소내용은 그러한 방법으로 금전등록기 사업을 독점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13213일 에드가 파크를 제외한 모든 피고인이 세 가지 기소내용에 모두 유죄인 것으로 평결이 내려졌다. 이 일은 결과적으로 왓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판과 재판 결과는 왓슨에게 개인의 일이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또한 자신이 자기중심적이고 부정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보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러한 재판을 겪지 않았다면 왓슨은 IBM을 건설한 위대한 리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NCR측 변호사인 존 밀러는 즉시 항소했다. 판사는 피고인들을 보석금 5000달러에 풀어주고 선고를 연기했다.

1913417일에 왓슨은 재닛과 결혼했다. 왓슨 부부는 웨스트 코스트로 신혼여행을 떠났고, 몇 주일 후 왓슨 부부가 다시 데이턴에 돌아오자 패터슨은 깜짝 놀랄 결혼 선물을 선사했다. 데이턴 외곽에 패터슨 농장으로 사용하는 주택 근처에 집을 한 채 선사한 것이다. 재판 이후 우울한 날들과 비교해서 모든 일이 갑자기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왓슨에게 호의를 베풀던 패터슨이 곧 마음을 바꿔 왓슨을 해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왓슨은 재닛을 데이턴에 남겨둔 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뉴욕으로 떠났다.

 

2장 플린트와 만나다

1911년에 플린트는 컴퓨팅 스케일’, ‘태뷸레이팅 머신 컴퍼니’, ‘인터내셔널 타임 레코딩 컴퍼니을 하나로 합병하고 뉴욕 엔디콧에 본사를 두었다. 플린트는 컴퓨팅 태뷸레이팅 레코딩 컴퍼니(Comp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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