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평전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1:47:09]  HIT : 24  

넬슨 만델라 평전

자크 랑 지음

실천문학사 / 200710/ 414/ 15,000

 

저자 자크 랑

12년에 걸쳐 문화부와 교육부 장관을 역임해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최장수 임기를 기록했으며, 2007년 프랑스 대선의 사회당 후보로 거론된 바 있는 유력한 정치인이다. 특히 미테랑 대통령의 산하에서 문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운용하여 문화대통령이라 불렸을 만큼 프랑스 문화의 제도적 안정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문화적 다원성을 중시한 그의 열린 철학은, 프랑스 현대문화에 독창성과 포용력을 동시에 부여했다. 문화와 문명의 보전을 정치적으로 실천해온 저자에게 있어, 넬슨 만델라가 보여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단한 헌신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명제였을 것이다. 이에 예술가들을 모아 공연을 후원하는 등의 구명 운동에 이어, 고대극과 남아프리카 해방문학을 아우르는 지성과 감성으로 넬슨 만델라의 평전을 집필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자 윤은주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대와 국민대에 출강하고 있다.

 

Short Summary

신화와 영웅이 사라진 오늘날, 혁명과 저항의 소용돌이에서 숱한 고난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이상과 현실이 일치된 삶을 구현해온 존경할 만한 정치인을 우리는 몇이나 가지고 있을까. 넬슨 만델라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강인한 투사로서, 전제정치에 당당히 맞선 현인으로, 그리고 미학에 조예가 깊은 교양인으로서, 이상과 행동이 일치된 실천적인 삶의 모범을 구현한 참다운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만델라에게 있어서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소명이었다. 그것은 운명적이고, 또한 공공선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열에 의해 구현되었다. 하지만 만델라가 뿌리에서부터 민중의 투사였던 것은 아니다.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궁정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대학교육까지 받으며 일반 아프리카 흑인들에 비해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러나 이러한 계급적 배경과 부유한 삶을 버리고 저항운동에 몸을 던졌기에 그의 투쟁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 검은 영국인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인간의 존엄성이 비합리적으로 짓밟히는 과정을 체감하면서 이제까지 순응해온 제도에 대한 공손함을 벗어버리게 된다. 이때부터 질곡의 삶을 살아가게 된 그는 1940년 포트헤어 대학 2학년 때 퇴학을 당하고, 다시 법률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국민회의라는 정치단체에 가입한다. 그리고 1952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흑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흑인인권운동에 참여한다. 처음에 그는 비폭력운동을 전개했으나, 19603월 샤프빌 학살 사건을 계기로 무장투쟁으로 선회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차례 체포되고, 19646월에는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후, 백인 정부가 그를 석방할 때까지 27년간의 복역 기간을 거치는 중에 각종 인권상을 수상하면서 현대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로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각인된다.

 

 

넬슨 만델라가 진정 위대한 까닭은, 용서와 관용이라는 미덕으로 남아프리카를 통일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겪으면서 억압받는 자만이 아니라, 탄압하는 자들의 영혼도 파괴된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긴 영어의 생활을 끝내고 자유를 만났을 때, 그는 힘에 의지하던 투사가 아닌, 모든 인간에게 내재한 선의지와 자비를 믿는 성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19917,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백인정부와 협상을 벌여 350여 년에 걸친 인종분규를 종식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인 데 클레르크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19944월에는 남아프리카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총선거를 통해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용서와 관용에 기반을 둔 과거 청산에 성공하여 전 세계에 평화와 상생(相生)의 메시지를 전파한다.

 

넬슨 만델라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실천적인 모범을 보여 왔다면, 이 책의 저자 자크 랑은 문화와 문명의 보존을 정치적으로 실천해 왔다는 점에서 만델라와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 책은 그 공통분모를 통해 정치가가 바라보는 정치가에 대한 평가를 넘어 오늘날 정치가 지닌 의미로까지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특히 정치에 대해 신뢰를 잃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정치 본연에 담긴 숭고한 의미, 즉 공공선에 대한 노력과 그에 대한 동지애를 숙고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참다운 정치가의 궤적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새해 들어 또 한 번의 참정권을 행사할 우리에게 매우 큰 책임감을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차례

서문

들어가며

 

1막 안티고네

2막 스파르타쿠스

3막 프로메테우스

4막 프로스페로

5막 넬슨 왕

 

부록

()

연보

역자 후기

넬슨 만델라 평전

자크 랑 지음

실천문학사 / 200710/ 414/15,000

 

1막 안티고네

 

넬슨 롤리흘라흘라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책들이 출간되었고, 다양한 각도에서 그의 면모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 저서들과는 달리, 세계라는 큰 무대 위에 선 존재감 있는 배우로서 만델라를 묘사하고자 한다. 넬슨 만델라가 인간에 대한 억압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극복하고 해결해야 했던 내적인 갈등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델라의 삶을 5막의 연극으로 풀어내고 있다. 먼저 1막에서 만델라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Antigone)역할로 등장한다. 안티고네가 국가와 개인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했듯이, 이상주의자이며 열정적인 젊은이였던 만델라는,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주어진 숭고한 책무를 깨닫고 이제까지 복종해왔던 도시의 법을 위반해야 함을 깨닫는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트란스케이의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렸을 적 이름은 로하바였으며, 부족 말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만델라는 왕자에 준하는 신분이었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운명이 뒤바뀌게 된다. 1920년대 남아프리카 체제하에서 모든 추장들은 구역 행정을 책임지는 백인 집정관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템부족의 한 부족민이 추장을 고소했다. 소 한 마리가 달아나는 것을 방조했다는 이유였다. 집정관이 곧 출두 명령을 내렸으나 추장은 명령을 거부했다. 그에게 이 사건은 원칙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는 촌락 내부의 문제에 관한 한 영국 왕의 법이 아닌 템부족의 관습에 따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만델라의 아버지는 한꺼번에 지위와 재산, 모두를 잃고 만다.

 

만델라는 물려받을 재산도 교육받을 기회도 상실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친다. 템부족 섭정이 만델라를 궁전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만델라의 아버지가 자신을 섭정으로 추천해준 데 대한 보답의 뜻이었다. 만델라는 섭정의 배려에 의해 다시 귀족 신분으로 자라게 된다. 그는 명문학교인 클라크뷔리에서 중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이후 대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학교라고 할 수 있는 포트헤어 대학에 입학해서 법률을 공부한다. 그는 일반 아프리카인들과는 다른 이러한 계급적 배경과 부유함 속에서 검은 영국인이 되어갔다.

 

만델라는 이때까지 백인들이 가하는 억압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직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차별정책)가 제도화된 형태로 출범하지 못했고, 따라서 카피르(Kaffir, 아프리카부족)들은 본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델라는 그저 나라를 위해 일하리라는 충성심으로 영어를 배우고 남아프리카 법제를 지배하고 있는 네덜란드 법을 공부했다. 그런데 포트 헤어 2학년 때, 만델라는 처음으로 카피르라는 자신의 조건을 인식하게 된다. 그해 겨울, 만델라는 친구 폴과 함께 트란스케이의 한 우체국에 들렀다. 그런데 60대의 한 백인이 폴에게 돈 몇 푼을 건네주며 우표를 사 오라고 했다. 당시 백인이 흑인에게 잡일을 시키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때 폴은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 백인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화를 내며 폴을 모욕했다. 이 우표 사건을 계기로 만델라는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것을 그대로 감수해서는 안 된다고 자각한다.

 

방학이 끝나고 포트 헤어로 돌아온 만델라는 제도에 대한 공손한 태도를 벗어버리게 된다. 학생대표위원회에 뽑힌 그는 학교 측에 학생들의 요구를 주장했다. 당시 존경을 받고 있던 교장 케어 박사는 이러한 불복종 표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방학 동안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이름   비밀번호
 
비밀글
     28. 노무현과 자존심
     26. 도산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