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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1:46:26]  HIT : 0  

도산 안창호

이광수 지음

세시 / 20135/ 304/ 12,000

 

저자 이광수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05년 천도교와 관련된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신학문을 접하고, 1907년 메이지 학원 중학 3학년에 편입하여 톨스토이의 작품에 심취하였다. 1910년 메이지 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원으로 일했다. 1914년에 러시아로 가서 대한인정교보주필로 일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귀국하였다. 1915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 예가에 편입한 뒤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17무정을 발표하고 이어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등을 발표하여 근대소설을 개척하였다.

 

1919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귀국하여 체포되었다가 불기소 석방된 후, 1924영대동인이 되었다. 1926년 수양동우회를 발족하고 기관지 동광을 창간하였으며, 동아일보편집국장에 취임했다가 다음 해에 사임하였다. 1932년 장편 을 발표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815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 출감한 후, 한국전쟁 중 납북되어 195010월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작품으로 이순신, , 단종애사, 마의태자, 유정, 사랑등이 있다.

 

Short Summary

춘원 이광수와 도산 안창호의 첫 만남은 1905년 일본 동경에서였다. 이광수는 일진회의 유학생으로 뽑혀 동경에서 수학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경의 한 연설회장에서 안창호의 연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창호의 확고한 민족관과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광수는 조선 청년독립단에 가입하게 되고, 독립선언서를 기초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 일로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어 중국 상해로 탈출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안창호를 만나 안창호를 보좌하며 임시정부 일에 참가하게 되고, 안창호가 만든 독립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 되어 애국적, 계몽적 이념을 담은 많은 글들을 쓰게 된다. 그리고 1937년 안창호와 이광수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잡힌다. 그 일로 안창호는 감옥에서 병을 얻어 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광복 후 이광수는 친일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직을 맡았던 일로 반민법에 의거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된다.

 

이 책은 해방 직후 안도산선생기념사업회가 당대 최고의 문인 춘원 이광수에게 집필을 의뢰하여 쓰인 작품으로, 도산 안창호의 삶과 애국정신을 그리고 있다. 성실과 수양과 사랑으로 일관한 국민교육자이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안창호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그를 보좌하고 많은 활동을 같이 한 이광수가 심혈을 기울여 담아내고 있다.

 

1부에서는 안창호의 소년시대부터 미주 유학시대, 신민회 시대, 망명, 미주활동시대, 상해시대, 피수순국 시대까지 그의 발자취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2부에서는 안창호의 뛰어난 인간성과 깊은 사상을 자아 혁신, 송태 산장, 흥사단, 동지애, 이상촌 계획, 상애의 세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안창호의 생각과 철학, 민족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차례

1부 투쟁, 생애

소년시대 - 쾌재정(快哉亭)의 웅변

미주 유학시대 - 교포의 조직과 훈련

신민회시대 - 한말 풍운과 민족 운동

망명 - 실국(失國) 전후의 극적 사안

미주활동시대 - 살아 있는 태극기와 애국가

상해시대 - 임시정부에서 대독립당까지

피수 순국시대 - 민족정신의 수호자

 

2부 국민훈련

자아혁신

송태 산장

흥사단

동지애

이상촌 계획

상애(相愛)의 세계

 

부록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과 연설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생애와 연보

 

도산 안창호

이광수 지음

세시 / 20135/ 304/ 12,000

 

1부 투쟁, 생애

 

소년시대 - 쾌재정(快哉亭)의 웅변

선생의 이름은 창호, 호는 도산, 1878년 무인년 1112일에 대동강 하류에 있는 도롱섬 한 농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고향에 있는 사숙에서 공부했는데, 그 천성의 영민함이 이미 드러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갑오년은 도산이 17세 되던 해였다. 그는 평양에서 일본군과 청군이 접전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하여 일본과 청국이 우리 국토 내에 군대를 끌고 들어와서 전쟁을 하게 되었나 생각하였다. 그의 소년시대의 동지요, 수년 연상인 필대은과 이 문제를 토의하느라고 야심토록 담론하였다. 그래서 도산은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서 설치는 것은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즈음 미국에 오랫동안 망명하였던 서재필이 미국 시민 자격으로 조선 정부의 고문이 되어서 한성에 돌아왔다. 그는 나라의 독립과 부강이 국민의 각성과 단결에 있음을 역설하여 이상재, 이승만 등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그 뒤 독립협회는 세를 확대하여 만민공동회가 되었다. 이때에 안창호는 필대은 등과 함께 평양에서 궐기하여 쾌재정에 만민공동회 발기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감사 조민희를 앞에 놓고 수백 명 집회 중에 일대 연설을 하여 조민희로 하여금 감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고, 안창호의 명성이 관서 일대에 진동케 되었다.

 

도산은 힘이 독립의 기초요, 생명인 것을 통감하였는데, 그럼 힘이란 무엇이냐? 국민이 도덕 있는 국민이 되고 지식 있는 국민이 되고 단합하는 국민이 되어서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남에게 멸시를 안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국민이 되는 길은 무엇이냐? 국민 중에 덕 있고 지() 있고 애국심 있는 개인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길은 무엇이냐? 우선 나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공부하자. 도산은 이렇게 결심하였다. 이런 사고 방법은 도산이 평생 동안 쓴 방법이었다. 도산은 22세 때에 부인과 함께 인천서 미국선을 편승하고 미주로 향했다.

 

미주 유학시대 - 교포의 조직과 훈련

도산이 미국에 온 목적은 학업에 있었으나 당시 미국에 이민 온 한국 동포들의 현상은 도저히 그로 하여금 학업에 전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한 지 얼마 안 된 어떤 날 도산은 길가에서 한인 두 사람이 상투를 마주 잡고 싸우는 광경을 미국인들이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산은 그들의 싸움을 말리고 싸우는 연고를 물었다. 그들은 인삼 행상을 하는 이들이었는데, 싸움의 이유는 협정한 판매 지역을 범하였다는 것이었다. 도산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샌프란시스코에 재류하는 동포를 두루 찾아 그 생활 상태를 조사하였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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