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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1:45:42]  HIT : 0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야마 겐타로 지음

서울문화사 / 20175/ 263/ 13,800

 

저자 오야마 겐타로

아이리스 그룹 회장. 아이리스오야마 주식회사 대표이사. 1945년 오사카에서 제일교포 3세로 태어났다. 1964년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오야마 블로 공업소대표로 취임하였고, 이후 1991년에 사명을 아이리스오야마로 변경하였다. 센다이 경제동우회 대표 간사, 일본 뉴비즈니스협의회연합회 부회장, 동북경제연합회 부회장, 도호쿠대학 총장 고문, 부흥청 부흥추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사단법인 뉴비즈니스협의회에서 1990년에 주최한 제1회 뉴비즈니스 대상을 수상하였고, 2004년 중국 다렌 시 영예 공민에 임명되었다. 2009년에는 남수포장 및 센다이 시 특별지정공로자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메이커벤더의 마케팅 전략(공저), 홈솔루션 매니지먼트, 핀치는 빅찬스, 롱셀러가 회사를 망친다등이 있다.

 

역자 유윤한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분야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넘어졌다면, 일어나라!, 바위를 들어올려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생각 버리기 연습, 침묵 입문, 기적의 영업소등이 있다.

 

Short Summary

일본 아이리스 그룹 회장인 오야마 겐타로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고등학생 시절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은 플라스틱 공장을 이어받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청을 받아 일을 하던 중,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부조리한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상품을 개발하는 제조업체를 일구기로 결심한다.

 

그런 일념으로 스물두 살 때 직접 만든 어업용 부표와 농업용 육묘상자가 히트를 친다. 하지만 그 후 오일쇼크로 인해 도산 직전까지 몰리게 되고, 가족과도 같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그는 수많은 시련을 경험했지만,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를 극복해 연매출 3.5조의 생활용품 기업 아이리스 그룹을 세운 세계적 기업가로 거듭났다.

 

이 책은 지방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으로 성장한 아이리스 그룹의 오야마 겐타로 회장의 경영 철학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리스 그룹은 플라스틱 어업용 부표, 농업용 육묘상자, 원예용품, 애완용품, 투명한 수납상자, LED전구 등의 히트 상품을 출시했다. 오야마 겐타로 회장은 수많은 히트 상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비결을 히트 상품에만 기대지 않고, ‘기업은 미완성이라는 의식 아래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려는 아이리스의 경영 이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오야마 겐타로 회장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회는 반드시 있으며,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그 기회를 움켜쥘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차례

머리말

1부 나의 이력서

2부 나의 경영 이념

3부 직원들에게는 전하는 메시지

 

옮긴이의 글 / 아이리스 그룹 연표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야마 겐타로 지음

서울문화사 / 20175/ 263/ 13,800

 

나의 이력서

 

지진에서 부흥으로

지진 후 첫 조례 동북 지역을 부흥시키다: [초조한 마음, 멈춰 선 차] 2011311일 오후 246, 나는 드럭스토어 쇼에 참가하기 위해 치바 시 전시장에 있었다. 갑자기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순간 진원지는 미야기 현의 먼 바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틀 전에도 본사와 자택이 있는 미야기 현에서 진도 5의 지진이 일어났고, 여진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초조한 기분으로 차 안에서 TV를 켰다. 센다이 공항으로 쓰나미가 밀려드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미야기 현에는 전화도 되지 않았다. 최고위 간부 4명 중 나를 포함한 3명이 오사카, 나고야, 치바에 출장 중이었다. 모두에게 즉시 센다이로 돌아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나는 4번 국도를 타고 센다이로 가려 했지만 후쿠오카 현 시라카와 역 근처에서부터 도로가 토막토막 끊겨 갈 수 없었다. 이틀 후인 13일 아침에는 도로가 복구되어 드디어 미야기 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가와라 공장, 가쿠다 공장, 센다이 본사 건물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내부 곳곳에 지진이 남기고 간 크고 작은 피해가 보였다.

 

[“이곳에 남아 일해주길 바랍니다”] 다음 날은 월요일이었고, 직원이 참여하는 조례가 열렸다. 나는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 가장 걱정되는 것은 가족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품을 만들어 내보내야 지진이 쓸고 간 동북 지방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을 내보내지 않는 대신 지자체에 3억 엔을 기부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남아 동북 지방 회복을 위해 일해주기 바랍니다.” 직원들의 얼굴에선 불안의 빛이 사라지고 결의가 차오르고 있었다.

 

즉단즉결 적자를 각오하고 물자 확보를 서두르다: [유통 시스템을 역회전시킨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미야기 현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문의가 이어졌다. 주민 대피소에서 쓸 생활용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류에 강한 회사 시스템 덕분에 많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유통 시스템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각지의 매장들로부터 물건을 끌어모았다. 물론 적자였지만 필요한 상품을 확보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신 대지진을 겪었기 때문에 간이 난로, 봄베, 배터리, 자전거 등이 턱없이 모자라게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물건을 확보하려고 서둘렀다.

 

[절전 수요 예측, LED 증산] 지진의 피해는 미야기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전력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문득 지진이 나기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사업이 떠올랐다. LED조명 기구는 전력 소비량이 적지만, 형광등에 비해 가격이 비싸 보급이 잘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전을 위해 LED조명으로 바꾸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공장과 창고 복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3월 하순쯤 우리 회사의 LED공장이 있는 중국 다렌 시로 날아갔다. 그리고 당장 설비를 증설해 조명 기구 생산 능력을 3배로 키우도록 지시했다. 4월이 되자 LED주문량이 전년도 같은 달 대비 2배로 늘어났고, 5월에는 3배에서 5배로 훌쩍 뛰었다. 만약 미리 생산 설비를 증설해두지 않았더라면 급격한 상황 변화에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흥은 사람으로부터 지역 경제를 떠맡을 사람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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