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기독교문화운동과 영화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53:30]  HIT : 30  

13장 기독교문화운동과 영화

- 유재희 -

 

1. 문화의 순응자와 적대자

어떤 사람은 󰡒단순한 기분풀이로 가끔씩 보는 영화가 뭐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으랴. 영화는 그저 여가시간을 때우는 오락거리일 뿐 심각한 토론의 주제는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영화는 급할 때 화장실에 들어가는 배설하듯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일 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영화를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실족케 하는 사탄의 도구라고 여겨 경계하고, 공격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외설적이며,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기독교적인 영화는 찾기 힘들다. 영화관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길거리에 나붙은 포스터만 봐도 그 내용이 어쩔지 뻔하다.이렇게 영화의 반기독교성을 주장하는 그는 오늘날 사회 도처에 난무하는 폭력과 성범죄,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성개방 풍조와 퇴폐문화를 조장하는 주범이 폭력 장면이나 노골적인 성행위를 뻔뻔스럽게 묘사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 두 사람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물론 영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시각을 이 두 가지 입장으로 다 포괄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개별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를 보는 시각은 저마다 서로 다르다. 하지만 대개는 명확하게 자기의 입장을 규정하지 않고 무심하게 지낸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모델은 이처럼 영화를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을 세우지 않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이끌리게 되는 양극단이다.

 

2. 두 가지 기독교문화운동

 

그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발전되어왔고, 나름대로 문화 영역에서 구체적인 기독교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일부 단체들을 통해서 영화, TV, 비디오, 케이블 방송 등의 영상 매체들에 대한 기독교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이 표명되었고, 그 견해들은 직?간접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상매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불건전한 비디오와 영화, 만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만한(암묵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권장되는) 추천영화 목록을 제공하는 건전 비디오 보기, 좋은 영화 보기 운동 등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시민적 차원에서 영상문화의 저질화에 대응하는 대표적 모델이 되었다.

한편으로 영화 속에 표현되는 세계관의 반기독교성, 악마주의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도 기독교문화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영화와 음악에서 뉴에이지적 요소와 음악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악마주의적 요소(노래말과 스타들이 착용하는 복장, 액세서리, 앨범 자켓의 자신이나 삽화 등에 나타나는 특정한 상지)에 대한 비판관 거부운동은 건전 비디오 운동과는 또 다른 영적 차원에서의 문화 대응의 성격을 띤다. 이 두 가지 운동이 취했던 노선, 즉 윤리적 성격을 띤 시민운동과 반기독교적 문화에 저항하는 종교적 성격의 비판운동 등 두 방향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3. 영화가 인간을 구원하거나, 타락시킬 수 있는가?

 

우리에게 영황의 윤리성, 영적 특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종이라도 있었다면, 비윤직저이고 반기독교적인 영화를 교회와 이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일이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기타 문화적 산물들의 윤리성과 영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한 개인아니 집단의 윤리성 여부, 영적 경향성을 판단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만일 어떤 영화의 비윤리성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곧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윤리성에 대한 도전이 된다. 또 어떤 노래가 영적으로 반기독교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려면 궁극적으로 그 음악을 만든 작곡가나 작사자의 영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창작자의 영성, 윤리의식, 창작 의도 등이 그것을 수용하는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말을 하는 자의 의도와 표현은 그것을 듣는 자의 독립된 의지와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영화의 창작과 수용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흐가 작곡한 칸타타가 바흐의 영성을 청중들에게 그대로 전염시킬 수 있다면, 이른바 악마숭배자들의 음악도 그것을 듣는 모든 청중들의 영을 미혹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특정 장면들(남녀의 성관계, 가학행위, 폭력 등)이 전체 맥락 속에서 아무리 적절하게 표현되었다고 해도,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관객의 내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만드는 자의 윤리와 영성은 그것을 수요하는 자의 윤리적, 영성 수준과 일종의 대화적 관계를 가질 뿐이다. 화자와 청자의 의지는 서로 일치할 수 있지만 반대로 충돌할 수 있으며, 두 사람의 의지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4. 데모 주동자가 영화라구?

 

마드리드에서 한 과학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는 여섯 명의 연구원들이 저 예산으로 홍행에 크게 성공했던 영국 영화(풀 몬티(The Full Monty)>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여 각각의 등에 󰡒12퍼센트 YA!' 라고 쓴 채 알몸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연구소 예산의 12퍼센트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렸다.(사진1) <풀 몬티>(사진2)가 영국의 실업자들이 겪는 고통스런 현실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처럼 노동자들의 시위를 선동할 목적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애초에 노동자들의 각성과 선동을 위해 기획되었다면, 결코 여섯 명의 실업자들이 여성 관객 전용 무대에서 스트립쇼를 한다는 어이없는 소재를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여섯 명의 남자들이 벌인 스트립쇼는 회사에 대한 시위가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든 눈물겨운 의도였다. 반면 이탈리아와 마드리드의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풀 몬티>로부터 아이디어를 빌어왔으며, 이 영화의 광범위한 인기와 설득력을 이용하였다. <풀 몬티>가 일으킨 유럽지역의 연쇄적인 스트립쇼 시위는 감독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적 산물과 수용자의 영향 관계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즉 수용자는 하얀 백지처럼 수동적으로 영화나 음악이 던지는 특정한 메시지에 감염되고 영향받는다는 논리말이다. 과연 그럴까? 사악한 영화나 음악에 희생되는 무고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우스꽝스럽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의도로나 나쁜 의도로, 저 마드리드의 노동자들처럼 영화를 이용하는 일이 없을까?

 

 

5. 기독교문화운동에 대한 반성

 

우리 자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냉정하게 직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창작자, 수용자, 문화 사역자 모두 문화 영역의 발전을 시도한다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기 어렵다. 21세기를 앞둔 지금 우리는 무()로부터 문화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우리가 쌓아온 결과무들을 짊어지고, 그 토대 위에서 진로를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문화운동의 커다란 두 gm, -즉 비윤리적, 반기독교문화에 대항하는-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어떤 운동이 대중의 지지와 호응을 얻는다면, 그 운동이 목표하는 바가 대중의 욕구와 문제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두 운동은 각각 한쪽 방향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문화관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 문화 속으로 개입하고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차라리 안 보고 안 듣고, 비판하고 방어하는 편을 택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세속사회 속에 교회와 기독교 진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영향력이나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자의식, 세속화의 거센 흐름을 역류시킬 만한 힘이 우리에게 없다는 패배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문화 전체를 철저히 사탄의 지배아래 놓인 회생 불능의 악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결국 우리는 손에 닿지 않는 포도송이를 향해 󰡐신포도󰡐라고 비아냥대는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세상 문화를 맛보지도 않고 썩었다고 손가락질하고, 점점 비딱한 눈으로 보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6. 획일화된 질문, 한결 같은 답변

두 가지 운동의 근본적인 물음인 󰡐이 영화(음악, 책 등)가 건전한가 그렇지 않은가? 반기독교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 그 자체는 지극히 주관적인 답변을 유도한다. 개인마다 그 기준에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다른 구체적인 질문들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윤리성이나 영성의 문제는 수용자와 창작자, 문화적 산물들, 유통?배급 구조에 대한 분석과 객곽적 관찰이 없이 막연하게 정의되어서는 안된다. 한 개인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나쁜 영화를 만드는 것과 상업주의적 목적에 따라 영화를 자체 검열하고 마구잡이로 필름을 가위질하는 것은 모두 비윤리적(비기독교적)이지만 그 대응 방법은 달라야 한다. 성인과 청소년, 어린이를 같은 수준에 두고 일괄적으로 수용자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일정한 나이를 기준으로 정신적, 영적 능력을 판단하는 것이 사회적 수준에서는 필요하지만, 개인차를 반영하지는 못한다. 또 영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영향력 문제도 영화의 내용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수용자의 윤리적, 영적 상태야말로 영화가 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운동 모두 수용자의 의지보다는 문화가 미치는 일방적인 영향력을 강조해왔으며, 다양한 충의 수용자보다는 특정수용자(청소년), 창작자보다는 관객을 염두에 두고 운동을 추진해왔다. 뿐만 아니라 수용의 대상인 문화적 산물들이 소비적인 오락상품인지, 예술작품인지, 혹은 영적 교훈를 전달하는 선교적, 교육적 도구인지를 구별하는 객관적이고 타당한 기준 없이 모든 것을 교육적, 종교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비판하였다. 물론 하나의 운동이 건전한 문화, 참된 기독교문화를 회복하고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모든 사람이 수긍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즉 건전한 영상문화를 회복하자고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불건전한 것과 건전한 것을 가라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또 반 기독교적 문화를 몰아내자는 구호가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반기독교적인 문화의 특징과 예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특별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상식 차원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정성과 폭력성의 요소는 가장 쉽게 영화와 만화, 비디오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며, 건전한 비디오의 목록을 제공하는 것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준다. 동일 선상에서 문화속에 타나나는 악마주의를 비판하고, 공공연히 악마를 숭배하는 서구 연예인들의 노래나, 영화 등은 문화적 산물 이전에 사탄의 도구로 해석되었고, 강력하게 금기되었다. 그러나 동양권이 한국에서는 새로운 종교에의 갈망으로 동양 신비주의 종교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던 서구와 달리 뉴에이지의 영향력이 미약하고, 기독교에 대항하는 악마숭배의 종교적, 문화적 함의 또한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이곳에서는 이질적이다. 결국 반 뉴에이지 논쟁은 폐미니즘, 동성애 문제처럼 자생적인 문제였다기보다는 논의 자체를 수입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어쨌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뉴에이지 공포에 휩쓸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 페미니스트의 신봉자가 되었다. 폐미니즘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지만, 그것이 영화로 표현되었을 때 이른바 말하는 윤리적, 영적 비판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았다. 폐미니즘 영화들은 여성의 육체를 구경거리고 삼기를 원치 않았고 따라서 폭력성과 선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윤리적 하자가 없었다. 또 보수적인 기독교 여성관에는 불만이 많았겠지만 󰡐반기독교󰡐를 표방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비평가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가사분담과 육아문제로 갈등할 때 세속적 폐미니즘은 희상과 사랑 대신 자기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현대적 여성상을 제시해주었으며, 90년대에 쏟아져나온 페미니즘 영화들은 이 새로운 여성상을 유포시키는 전령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그러나 이같은 흐름에 대해 기독교문화비평가들은 어떤 뚜렷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적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비판적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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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15장 문학 속의 성(性)
     20. 12장 교회와 대중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