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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52:38]  HIT : 6  

12장  교회와 대중음악


 ❚강인중

   요즈음 우리 교회가 겪고 있는 문화적 혼란과 갈등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중음악과 관련한 문제들이 아닌가 한다. 수년 전 뉴에이지 운동과 그 관련 문화에 대한 교회의 경계심을 촉구하고 기존의 문화 수용 태도를 환기시킨 바 있는 일련의 거센 반(反) 뉴에이지 운동으로 촉발된 대중음악과 관련한 교회 내의 담론 분위기는 그 동안 모든 대중음악에 대하여 '영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떠안고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문화의 속성상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다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야기되었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대중음악에 대하여 양극단의 태도로 대립하는가 하면, 냉소와 무관심, 또는 도피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의 분열된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제 교회는 그 동안 소극적, 방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 분야에 대한 좀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연구와 논의를 통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줄여야 한다. 특히 대중음악의 주수용자 계층인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하루 빨리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 글은 근래 교회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음악적 이슈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거대한 물결로 넘쳐나고 있는 대중음악의 현상들을 짚어보고, 현재 한국적 문화 상황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대중음악 수용자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CCM

  1) 음악적 개념과 현황
   먼저 요즈음 교회 내에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CCM은 그 시대에 유행하는(contemporary한) 음악 양식에 기독교적(christian) 메시지를 결합한 음악(music)을 뜻하는 말로,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을 말한다.
  CCM 이 비슷한 개념인 복음성가와 구분되는 점은 복음성가가 매우 제한된(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 데 반해 CCM은 팝, 록, 댄스,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CCM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흑인영가와 가스펠 음악을 지칭하는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에는 'Jesus Music, Jesus Rock'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70년대 말에 CCM이란 용어가 등장하였고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지 「빌보드(Billboard)」가 1984년, 영감의 곡으로(inspirational) 통치하던 기존의 대중적 기독교 음악을 CCM과 가스펠로 분류하면서 일반화되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CCM 음반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에는 CCM 록 밴드인 스트라퍼(Stryper)와 샌디 페티(Sandi Patti)가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기독교방송(CBS)으로, 독보적인 CCM 전문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CCM 전문 잡지가 등장하였고 PC통신 등을 통한 애호가 집단이 늘어나고 있으며 국내의 젊은 기독교 가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CCM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이루어진 미국의 대표적인 CCM 록 밴드인 페트라(Petra)의 내한 공연과 대규모 문화행사로 치러진 CCM 관련 회의는 한국에서의 CCM의 확장 속도와 열기를 잘 보여주었다. 특히 신세대 크리스천들이 향유할 대안적 대중문화로서의 역할이 교회 내의 설득력을 얻으면서 CCM 당위론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 음악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사실상 이 음악에 대한 논란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CCM의 태동 이후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미 나와 있는 찬반양론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찬성론
  (1) 교회는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맞는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 CCM은 신세대 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독교 음악이다. 특히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전한 대용(代用)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
  (2)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 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 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3) 음악은 본래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에 선한 메시지를 결합하면 선한 음악, 악한 메시지를 담으면 악한 음악이 된다. 영성은 평온함(serenity)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구약의 예배에는 매우 왕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록 음악 등 비트가 강한 음악에도 기독교 메시지를 접목시켜 사용할 수 있다.
  (4) 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교역자와 기성세대 교인들은 현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경험, 안목이 극히 빈약한 사람들이거나 보수주의자들이다.
 
반대론
  (1) 복음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CCM 이 세속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오락적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 태도에 머무르거나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양육된 젊은이들이 CCM을 접함으로써 다시 세속적 오락 문화에 빠지게 되는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다.
  (2) 성경 어디에도 음악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한 예가 없다. 비기독교인들은 세속적 음악을 흉내낸 교회음악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모습의 크리스천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3) 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분리할 수 없다. 즉 록, 헤비메탈 등은 가치중립적인 음악이 아니라 이미 반항성, 성적인 방종 등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일체(一體)로 하는 악한 음악이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악기에 의한 찬양이 언급되는 거슨 악기 사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4)CCM 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와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CCM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한 문화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CCM 가수들이 표리부동한 신앙과 문란한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대 대중음악을 기독교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그 동안 계속 진행되어온 일로 그 시도 자체를 비판하기는 힘ㅁ들다. 다양한 음악 언어로 찬양하는 것은 성경적이며 교회가 음악 속에 시대적인 혹은 사회, 문화적인 가변 요소를 인정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도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이 곧 모든 형태의 기독교 음악이 가능하다는 극단적인 견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 대중음악을 찬양에 도입하되 음악 스타일의 채택에 있어서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 교회의 음악적 전통과 문화적 정서가 무시되지 않는 가운데 복음의 내용이 가장 잘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는 양식을 선별해 점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나치게 오락성이 강한 음악 양식의 채택은 자칫 복음을 가볍고 값싼 것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근래 우리 CCM문화의 경우, 서구적인 세련미와 오락성이 강조되는 경향으로 흐르면서 우리 복음성가 고유의 소박함과 진지함이 점점 사라지고 경건성이 희박해져간다는 지적이 적지 않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악의 내용과 가수들의 차림새는 다양해지고 화려해 지는데 정작 가슴을 울리고 영혼을 찌르는 감동적인 찬양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아쉬워한다.
  이와 함께 교회를 등지는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적 배려의 차원에서 CCM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교회에서는 과연 청소년들이 지금의 복음 성가만으로는 부족한가, 또는 찬송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은혜가 될 수 없는 고리타분한 노래에 불과한가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신세대를 주 대상으로 한 새로운 복음적 대중음악으로서의 CCM에 대한 가치 평가는 이 음악이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고 있느냐의 잣대에 의해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무릇, 기독교 음악(Christian music)이란 그것이 아무리 대중성을 표방한다고 해도 그 우선 가치가 음악이 아닌 복음'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뉴에이지 음악
 
  그 동안 우리 교회 안에서 가장 튼 문화적 이슈의 하나로 손꼽혀온 뉴에이지 음악에 관한 논란은 초기의 열띤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크리스천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1) 음악적 개념과 동향
  이 음악은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내에서 헤비 메탈, 댄스 등 강한 비트의 음악이 유행하자 이러한 음악을 거부하는 계층의 요구에 부응하여 탄생한 음악으로 처음에는 주로 여피(Yuppie)를 중심으로 식사, 파티 등의 배경음악으로 시작되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운드를 배제하고 무채색의 단순한 선율의 반복과, 서정적 분위기(easy listening)의 연주음악(instrumental music)을 특징적 형태로 하는 이 음악은 도시 생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을 위한 편안함과 넉넉함을 제공한다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닌 내면 치료음악(music therapy, sound health)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여 왔다. 휴식음악(relaxation music), 환경음악(ambient music)등으로도 불리며, 근래에는 컨템포러리 어쿼스틱(contemporaray acoustic), 명상 음악(meditative)등 새로운 용어도 등장하고 있다.
  근래 뉴에이지 음악의 경향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크로스 오버(cross over)현상이다. 애초 클래식 음악과 민속음악(world music), 재즈,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뮤지션들에 의해 주도된 이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 장르 고유의 음악적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기타 인접 장르의 음악과 자유로운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다양한 변종(變種)을 탄생시키고 있다. 따라서 색깔이 모호한 퓨전(fusion, 이미지 혼합형 음악) 형태로 끊임없는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은 이제 어떤 양식의 음악이라고 간단히 규정하기가 불가능하다.
  일례로 아일랜드 출신 엔야(Enya)의 국제적 성공과 함께 뉴에이지 음악에 편입된 켈트(celtic)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와 뉴에이지 음악과의 접목 시도는 이 음악에 대한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이 음악의 사업적 측면에서의 대약진이다. 피아니스트 조지윈스턴의 국제적 성공을 이루어낸 미국의 독립 레이블(independent label)음반사인 윈드햄 힐(Windham Hill)이후에 프라이비트(Private), 나라다(Narada)등의 뉴에이지 전문 음악사가 등장하였고, 요즈음에는 유럽 쪽으로 세력이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이 음악의 시장 잠재력을 읽은 소니(Sony), 비엠지(BMG)같은 메이저 음반사들이 배급과 제작에 적극 관여함으로써 신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리하면 이제 뉴에이지 음악은 음악적 내용 면에서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면서 세계 시장에서도 무시 못 할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뉴에이지 음악과 기독교
  이 음악의 등장 이래 서구 기독교에서는 이 음악의 영적인 면에 대해 강한 의심을 품어왔다. 최근 뉴에이지에 대한 한국 교회의 관심이 급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뉴에이지 음악이 기독교인들이 들으면 안 되는 '사탄의 음악'이란 주장이 강하게 지배해왔다. 그 근거는 이음악의 초기 애호 계층이었던 여피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이 동양철학, 자연희귀운동을 근간으로 한 60년대의 히피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로 뉴에이지 음악을 명상, 자아성찰 등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주장이 발전하여 반기독교 종교운동인 새 시대 운동(New age movement)에서 뉴 에이저들이 사용하는 음악으로 확대,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 일반적으로 정의되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은 기독교에서 보는 종교적 개념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즉 음악에 관한 한 뉴에이지 라는 용어는 이미 우리가 문제를 삼고 있는 영적, 종교적 개념을 넘어서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휴식음악이나 명상음악을 총괄하는 의미의 상업적, 대중적 용어로 탈바꿈해버린 상태이다. 한 예로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케니 지(Kenny G)의 음악이 한때 뉴에이지 음악으로 알려진 적이 있는데, 이는 영적인 문제와는 무관하게 단순한 음악스타일에 의한 상업적 분류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의 음악은 실제 뉴에이지 운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팝 음악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범신론과 신비주의에 근거한 종교적 뉴에이지 음악과 뉴에이지 풍의 상업적 연주음악은 그 개염이 중복, 혼재되어 있는 현실이며 그 수용 계층도 뉴에이지 운동의 추종자를 뛰어넘어 일반 대중음악 소비자의 범위로까지 확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뉴에이지 음악과 관련한 그 동안 우리의 태도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즉 모든 음악을 뉴에이지 라는 잣대로 치수를 재고 재단하려는 음악 수용에 대한 완벽주의적 태도이다. 이는 예술적 관점은 도외시한 채 지나치게 영적인 시각에 집착해 음악을 분석하려는 것으로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영지주의(Gnosticism)의 함정에 빠지는 위험을 안고 있을 우려도 있다. 특히 음악가나 작품과 관련하여 지엽적인 영적 결함을 문제 삼아 전체를 정죄해버리는 극단주의적주장이 크게 득세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일반 음악에 대해서 반문화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 또한 뉴에이지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으로 인해 서정풍(easy listening)계열의 연주음악이 가지는 고유의 치유와 휴식 기능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와 함께 앵크 십자가나 백워드 매스킹(backward masking)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징물과 현상과 관련하여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던 것은 아닌지도 되짚어보아야 할 점이다.
  음악을 영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려는 태도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사탄에 대하여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양극단을 조심하라"는 C. S. 루이스(C.S. lewis)의 말은 우리가 뉴에이지 음악과 관련하여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3. 대중음악

1) 현황
  " 마돈나와 공룡이 세계를 지배 한다"는 표현은 오늘날 연예 오락산업(entertainment business)의 위력을 잘 말해준다.
  미국 영화와 팝 음악을 주 상품으로 하여 거대한 다국적 기업군에 의해 주도되는 이 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고속 성장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음악 시장은 이러한 세계적인 분위기의 영향 하에, 198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세계적 메이저 음반사와 음반 유통 회사의 상륙과 국내 대기업들의 진출로 인한 시장 규모의 확장, 영상매체의 기능 확대와 이에 따른 수용 계층의 연소화, 최근 일본 대중음악 반입 허용 같은 복합적인 상황이 연출되면서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합법적인 시장만을 놓고 이야기할 때 우리 나라 음반 시장은 연간 약 5천 억 원 규모로 세계 10위권,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은 2위이다. 여기에 콘서트 등 음악 관련 분야를 모두 합하면 1조 원 규모로 집계된다. 전체 음반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가요 시장의 경우 300개가량의 음반제작사(production)에 의해 1년에 1천여 종의 가요 음반이 제작되어 1천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다. 심심치 않게 밀리언 셀러(100만 장 이상 판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근래 우리 대중음악계는 간단하지 만은 않은 숱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2) 문제점
  (1) 저급성과 천박성 : 서태지 이후 대중음악 시장의 주 고객으로 등장한 10대를 겨냥한 대중음악 생산자들의 무분별한 상업주의적 제작과 과당 경쟁에서 파생된 현상이다. 음악 선택의 안목과 감상의 수준이 미성숙한 저 연령층의 기호에 편승한 예술적, 도덕적으로 저질의 음악이 양산되고 있다. 소비의 측면을 넘어 대중음악의 공급에 있어서도 10대 가수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면서 음악적 완성도가 미흡한 청소년들의 말초적 감성만을 자극하는 댄스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천박한 내용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노래 일색으로 대중가요의 저질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2) 퇴폐, 선정성 : 혼전 성관계나 동성애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여 비뚤어진 성의식을 조장하거나, 죽음을 미화하여 자살을 부추기는 노래, 폭력과 반항적인 내용을 뒷골목 언어로 여과 없이 표현한 선정적, 퇴폐적 가요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가요 음반에 대한 공윤(현 공진협)의 사전심의 폐지 후 창작,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고 등장하고 있는 파격적인 노래말들은 그 시도의 당위성을 일면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기존 우리 대중가요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 윤리 수위를 무너뜨리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내용을 무분별하게 담아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전 기윤실이 사전심의 폐지 이후 인기가요의 가사 내용을 모니터 한 결과 조사 대상 앨범의 50퍼센트 가량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가사를 싣고 있음이 드러났으며, 근래 케이블 TV,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해 수용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가요 비디오의 경우 선정성과 폭력성이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3) 음악적 정체성과 프로페셔널리즘의 실종 :  신세대의 무조건적인 외래문화 모방 풍조에 기인한 서구풍의 음악 스타일과 패션, 안무가 기세를 떨치는 가운데 노래 제목이나 가사, 가수 이름과 음반 표지 등에 무분별하게 영어가 남용되는 등 우리 대중음악의 정체가 무국적화해가고 있다. 이는 가뜩이나 수세에 몰려 있는 우리 대중문화의 주체 의식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주로 일본 가요 등 다른 가수의 작품을 허락 없이 도용하는 표절과 카피가 성행하여 건전한 창작정신과 장인정신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4) 소비의 양극화 현상 : 댄스 음악 등 특정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음악의 공급과 소비에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었고, 최소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요 음반이 양산되는 가운데, 제작자들의 전무 아니면 전부식의 투기형 경쟁 풍토가 심화되어 건강하지 못한 온갖 방법들이 감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제작사와 방송 등 매체와의 불건전한 유착 하에 편법적인 홍보를 목적으로 한 촌지 수수가 관행화되어 있으며 이로 인한 대중 조작이 심화되고 있다.
  (5) 비평의 편향성 : 근래에 들어 맹렬한 기세를 떨치고 있는 얼터너티브(alternative), 펑크(punk) 록의 붐은 문민정부 이후 대학가에 등장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이 배후에는 좌파적 경향의 대중문화평론가와 문화운동가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음악을 포함하여 문화, 사회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글 솜씨를 무기로 한 이들이 활약은 짧은 시간 내에 대중음악을 지적, 예술적 비평의 소재로 다룰 수 있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일구어냈다는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도하게 매체를 장악함으로써 이른바 문화적 부르주아를 탈피하자는 포스트모던적 문화 가치관인 파퓰리즘(populism)이 젊은이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고, 대중음악 우위론이 득세하는 가운데, 록 음악이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는 등  음악에 대한 비평이 균형을 잃고 있다. 이러한 간단하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우리 곁을 흐르고 있는 대중음악의 거대한 물결 앞에 크리스천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먼저 대중음악에 대한 바른 가치 평가와 선별을 위한 교회와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교회나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감시하고, 위험성을 지적해 청소년들을 보호하며 나아가 교회 중심의 소비자운동 등을 통해 퇴폐적 저질 음악을 철저히 차단 격리시키는 노력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가요에 대한 사전심의제 폐지 후 현재 유일한 여과 장치로 남아 있는 방송사의 심의가 본연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특히 '정치적 의미의 검열 해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외설과 퇴폐, 폭력물 등에 대한 감시 및 통제 장치 해제 분위기로 왜곡. 이용하려는 일부 대중음악 상품 생산자들의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이와 함께 건강한 노래, 양질의 예술성 높은 음악을 찾아 알려주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기독교방송과 문자매체는 이 분야에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를 위해 소명 의식이 뚜렷한 크리스천 대중음악가와 평론가, 제작자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이 필요하며 신학교와 교회 차원에서의 각자의 음악적 소양과 취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뢰성 있는 정보 수집과 음악 듣기 훈련을 통하여 음악 선택의 안목을 키우고 감상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대중음악을 선택하고 즐길 때 잊지 말아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절제의 문제이다. 대중음악은 철저히 상업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락 상품'이다. 즉 크리스천이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소비에 있어서 엄격한 절제가 필요하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용돈 가운데 55퍼센트가 음반 구입에 사용괴고 있으며, 여가 시간 중 FM라디오를 듣거나 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등 음악 듣기 시간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 입시와 출세에 초점이 맞추어진 우리네 특유의 교육환경 속에서 억압감과 열등의식에 짓눌린 청소년들이 가장 손쉬운 탈출구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나 이미 모방 자살 등 지나친 탐닉으로 인한 심각한 폐해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그대로 좌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의 입지와 사춘기의 통과 의례적 현상으로서 청소년들의 가요와 인기 가수에 대한 열광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는 있겠으나 현재와 같은 과도한 집착에 대해서는 가정과 학교, 교회 등을 총한 엄격한 통제와 함께 이들에게 대중가요 이외의 다양하고 건강한 욕구 분출의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할 책임이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또한 근래 PC통신 동호회와 대학가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문화적 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대중음악 감상 마니아 군(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데, 음악 감상에 대한 지나친 탐닉은 우상숭배의 덫에 사로잡혀 우유부단하고 게으르며 쾌락주의적인 성품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크다. 음악 듣기에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현실과 가난과 굶주림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지구촌의 이웃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즐기는 비용'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지금은 우리 대중음악의 생산과 소비에 막연한 거품을 빼고 과감히 비용을 줄여야 할 때이다.
  다음은 질(quality)의 문제이다. 우리가 음악 만들기와 듣기에 있어서 끊임없이 질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따라서 실력 있는 대중음악계를 만들고 그것을 건강하게 즐기는 대중의 역할을 찾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갈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대중음악이 가지는 예술적(심미적) 차원에서의 질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근래 서민화, 반지성주의 이데올로기의 득세로 어느 정도 수세에 몰리기는 했으나 클래식 음악은 인류의 값진 유산이자 예술의 보고(寶庫)로, 우리가 안심하고 질을 추구해나가며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음악적 선택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4. 맺음말
 
  우리가 음악과 관련하여 가지는 혼란의 상당 부분은 우리 교회가 은연중 견지해오고 있는 이분법적(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동하는) 문화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즉 찬송가나 복음성가 등 교회음악 이외의 (세속)음악에 대한 적대적, 배타주의적 입장이다.
  사실 대중음악의 대안으로 CCM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는 입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소년들에게 '세속적 대중음악'은 무조건 해로우니 듣지 못하게 하고 대신 기독교가 가미된 뭔가 '거룩한 대중음악'을 쥐어주는 것이 안전하다는 도피적, 자위적 성향의 이원론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세속음악을 무조건 정죄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싸워야할 것들을 분별해내고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면서, 우리가 누리고 변혁해나가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적극적 자세가 요구된다.
  우리의 문화생활은 우리 안에 경건이 자라갈 수 있는 한에서,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도록 짜여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탄이 대중음악을 붙잡고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우리 교회가 그동안 뉴에이지와 연관하여 이야기해온 차원을 뛰어넘어 더욱 다각적인 측면에서 논의 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사탄은 늘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우리를 미혹하려 한다. 즉 우리가 이원론적 사고에 사로잡혀 세속음악에 대해 도피적이거나 적대적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음악의 풍요로움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 우리를 계속해서 초보적이고 천박한 수준의 음악에 머무르게 하여 품위 있고 깊이 있는 예술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음악을 상업주의의 노예로 전략시키고, 음악 속에 반기도록교적인 세계관을 교묘히 주입시키는 것 등이다.
  사탄은 로맨틱한 거짓 사랑 노래로 젊은이들의 순결을 유린하고, 젊음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록 음악으로 허무주의를 주입시키며, 술과 마약사용을 부추겨 젊은이들의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들을 고려하면서, 이제는 우리 교회가 음악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음악이 정신적, 육체적 영적 치유효과(당연히 정반대의 효과도 있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는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요한복음15:19)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인 음악을 지혜롭고 선하게 누리면서, 변혁자의 자세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음악에 대한 구속적 활동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생각해 봅시다>

1. 세속적 대중음악의 대안으로서 CCM의 역할은 과연 어느 정도입니까?
2, 20세기 대중음악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비틀즈는 뉴에이지와 관련하여 경계 대상 아    티스트로 지목되어왔습니다. 과연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3. '록 음악은 사탄적 음악'이라고 할 때 이 음악은 어떤 음악을 말하는 것입니까?
4. 현재 인기 순위 20위권 내의 대중가요 음반의 노래말과 음악을 모니터해봅시다. 과연 요    즘의 가요는 현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까?    이 글의 저자 강인중은 연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음반 문예부장과 팝 칼럼리스트로 활동하였으며,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워너 뮤직(코리아) 대표 이사를 지냈다. 현재는 음반 기획사 ‘라이트 하우스’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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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13장 기독교문화운동과 영화
     19. 10장 텔레비전의 이해와 교회의 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