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진보적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평가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47:53]  HIT : 21  

4장 진보적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평가

 

김연종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면서 문화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지식을 얻거나 본격적인 공부를 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접할 수 있는 문화에 관한 글이나 서적들은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볼 때 매우 편향적이거나 제한되어 있다. 거개가 인본주의적인 시각이나 사회변혁적인 시각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구 사회 특히 유럽에서의 문화연구나 문화이론이 기존의 사회나 문화에 대한 저항적 시각에서 출발한 데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문화를 저항이나 전복의 한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세력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까닭이 클 것이다. 이러한 탓에 문화에 고나한 대부분의 담론은 이들의 저항의식과 맞물려 형성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미 그 내용이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문화를 기반으로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넘어서서 문화를 그저 기성세대나 기존의 것에 대한 단순한 󰡐저항󰡑 혹은 󰡐해방󰡑 또는 󰡐매이지 않음󰡑을 추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얼마 전 발간되오늘 예감이라는 잡지는 󰡐문화 죽이기󰡑를 선포하고 이 시대의 기성의 가치관이나 관습 등을 모두 전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섬뜩하지만 우선 쓸어놓고 보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제기되는 곳이 바로 오늘날의 문화판이다.

이러한 시각이나 의견들이 점철되어 있는 문화이론이나 문화연구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원칙을 따르고 있는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문화에 대해 지식이나 이해를 구하려는 경우 자칫하면 무분별하거나 잘못된 시각을 배울 수 있고 가치관의 갈들을 빚는 등 어려움에 처할 수있다. 이러한 혼란을 덜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이론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분별 있는 시각 형성이 먼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문화에 대해 좀더 많은 공부를 하려는 기독인들을 위해 문화이론이나 문화연구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발전되어왔으며 어떤 경향을 보이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하고, 이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주의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길라잡이로 쓰여졌다. 글의 진행은 기존의 문화이론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이에 대한 기독교적 평각와 더불어 나름대로의 해석과 결론을 덧붙이는 순서로 전개 하겠다.

1, 문화이론의 흐름과 경향

 

문화에 관한 수많은 주장이나 이론들을 단순히 몇 가지로 나누어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단순화에 따른 오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됙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가피하지만 단순 분류의 유용성을 택하기로 한다. 이 글의 목적이 문화연구에 대한 완벽한 해설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하고도 복잡한 연구 분야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심과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할 때 단순화에 따른 무리가 어느 정도 용서될 수 있을리라 기대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이 글에서는 편의상 국내와 국외로 나누어 문화이론의 큰 흐름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내용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다.

1) 외국의 문화연구

외국에서의 문화이론의 발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말에 대두된 대중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19세기가 도래하기까지 서양 사회에서 문화(culture)라는 말은 흔히 예술과 일치하는 개념으로 소수의 귀족들이 누리는 이른바 󰡐수준있는󰡑 문화활동을 가리켰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 등에서 대두된 대중사회는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로 특징지어지는 외형적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과거 봉건사회에서의 계급이나 지위를 붕괴시키면서 보통 사람들의 시대인 대중사회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서 대중이라 불리는 보통 사람들의 사회? 문화활동이 증가하였으며 이들의 참여에 의해 문화에 대한 인식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의 문화활동이 귀족들의 여가와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이었던 데 비해, 대중사회의 도래는 이른바 예술의 평준화 또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마침 이 시기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대중매체의 위력이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문화의 대중화는 가속화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체는 이들의 입맛에 맞도록 매체의 내용을 대중화하였고 이러한 대중매체를 통한 문화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문화의 질적저하를 가져왔다. 문화가 대중화된면서 문화의 수준 저하를 우려한 목소리도 커졌다. 귀족과 지식인들은 문화의 대중화에 따른 전통적 가치관이나 관습들이 파괴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대중의 존재나 그들의 행위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던 귀족과 지식인들은 그러한 새로운 유형의 문화가 진실한 예수르이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해치는 󰡐저급문화󰡑라는 이유로 비판을 가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대중문화 비판자들은 대중문화의 상업적 타락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대중문화가 영리 추구를 위해 조직된 기업에 의해 생산, 유포되며 그로 인해 대중에게 영합하는 동직적이고 규격화한 제품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특히 좌파적 입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대중문화가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고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체제를 정당화 한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에게 대중문화는 노동계급의 수동성과 무관심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호히 거부해야 할 󰡐아편󰡑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1920년대 이후 등장한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문화 확산의 중심에 있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서 주목하고 그것이 유포하는 문화적 폐해에 대해서 우려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미디어를 문화 확산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진 강력하고 직접적인 세력으로 보았으며, 문화를 통해 자본주의는 계급의식을 합법화함어로써 그 체제를 공고히 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미디어는 허위의식의 유포자이자 이데올로기전파 기구였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는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다. 이들은 미디어가 어떻게 계급사회를 지지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미디어의 메시지나, 메시지 내용의 생산과 통제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는 등 권력기관으로서의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집중했다.

한편 이들과 달리 대중문화의 문제점들을 인정하면서도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장점에 더 주목하고자 하는 사람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대중문화를 소위 무지한 사람들의 문화인 대중들의 문화(mass culture)가 아닌 대중 중심의 문화(popular culture)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들은 문화를 상업주의, 획일성, 지속성 등의 부정적 의미로 본 것이 아니라 건강한 대중들의 문화로 보았고, 문화의 민주적 성격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았다.

1960년대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등장한 문화연구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레이몬드 위리암스, 리차드 호가트, 이피 톰슨 등은 대중의 삶을 문화로 정의하고 그것은 결코 귀족들의 문화와 비교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과거 예술 중심의 문화관을 철폐하고 대중들의 삶의 의미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관을 철폐하고 대중들의 삶의 의미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를 상류계급의 특별한 예술활동이라거나 또는 단순히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피지배계급에 강요되는 허위의식으로서의 고정된 사고체계로 보지 않았다. 문화는 일상의 삶이며 사람들이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서 사고하고, 행위하고,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재생산하고 재구성해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대중문화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대중 역시 피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비록 제한되었다 하더라도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의미와 문화를 생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에 의해 문화연구의 주제인 󰡐문화󰡑는 예술의 영역으로부터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옮겨왔다. 이들은 우리가 입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요리나 쇼핑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 등을 연구의 관심사로 삼았다.

문화연구는 대중문화를 현대문명의 도덕적, 문화적 기준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는 예술적 전통에서 파생되었지만 점차로 이러한 엘리트적인 시각을 버리고 일상적인 것과 평범한 것, 즉 우리의 삶에 강력하고도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생활의 여러 가지 측면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주변적이고 저속한 것으로만 인식되어온 것들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적󰡑인 의미와 대중의 능동적인 삶이 결합해 문화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초점은 우리 일상생활이 어떻게 구성되어지며, 문화가 어떻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로 옮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문화연구는 일상 문화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파생돠는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밝혀내는 것으로 그 목적이 이전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는 자연스럽게 어떻게 우리의 삶이 구성되는지를 밝히는 이데올로기 연구로 이어졌다. 문화연구의 관심이 이렇게 모아진 것은 레비슈트라우스(Levi-Strauss), 소쉬르(Saussure),라캉(Lacan),바르트(Barthes)푸코(Foucault)등으로 대표되는 기호학이나 구조주의, 페미니즘 등의 이론들과 결합하면서부터이다.

그렇다고 문화연구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과 서로 분리된 채 완벽한 독립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이론적 전통에서 보면 문화연구는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둔 유럽의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연구의 기본 시각에는 오히려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알튀세(Althusser)나 그람시(Gramsci)등이 영향을 미쳤다. 문화연구의 시각은 마르크스주의 경우에서처럼 근본적으로 기존의 권력에 대한 저항과 현실 개혁운동을 전제하고 있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를 이어받은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이 문화 확산과 유포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산업에 대한 경제적 구조에 대해 비중을 둔 데 비해, 문화연구는 이들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문화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체제를 유지하는지를 밝히기 위해 문화 생산물의 내용이나 의미 같은 상징성에 비중을 둔 것이 달랐을 뿐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 비판이론의 맥을 이은 정치경제학적 연구가 자본주의의 문화적 지배양식이 어떻게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가에 주목하고 생산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알튀세에 기반한 구조주의적 문화연구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지배구조가 미디어의 생산물, 특 텍스트를 통해서 생산, 확대, 재상산되는가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연구의 주요 경향은 구조주의 방법론에 기반한 텍스트 분석이나 기호학을 도입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의 생산 및 재생산이나 주체 구성에 의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이념작용 등에 모아졌다.

문화연구는 이른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제들에 대해 도전하고 그것의 형성 과정에 깔린 역사성이나 정치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문화연구가 특히 노동계급, 청소년문화, 여성문제 등을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어온 것은 이들이 기존의 권력으로부터 억압을 받아온 대표적인 집단일 뿐 아니라 정치 권력의 이해관계를 좀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사회의 지배구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은 방법론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그 기본 전제는 급진적인 좌파의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대중문화를 일상생활의 구조가 검토되는 장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한 연구 과저은 단지 학술 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일상생활을 형성하는 세력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러한 형성 과정에 내재되어 있는 이해관계의 윤곽을 밝혀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인 차원 때문에 문화연구는 단지 전형적인 학문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연구를 이론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문화연구의 목적 자체가 이러한 현실을 들추어내고 개혁하고자 하는 운동성을 기본적으로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들은 좌익과 우익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문화로 보고자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저항이라는 개념을 과거의 권력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소극적인거나 작은 것에 대한 저항도 저항이라는 미시적 시각을 도입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시각은 지배문화, 또는 대중문화대 민중문화라는 식의 이분법적 분류도 문화 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가령 십대들이 열광해 마지 않는 마돈나나 서태지 등의 가요에도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한 저항성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데, 그 저항성을 인정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저항의 대상이 과거처럼 꼭 정치적이거나 거대한 권력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주요 기능으로 비판받아온 󰡐현실도피󰡑도 수용자가 원하는 한 능동적인 󰡐기분 전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항이론이라 통칭되고 있는 새로운 연구 시각은 기존의 문화 비판이론에 도전하여, 일반인과 하위문화 집단이 그 사회의 정치?사회 문화 체제가 제공하는 지배적 압력에 어떻게 저항하며, 그러한 저항적 행위를 통해 어떠한 즐거움을 얻는가 하는 논쟁적인 문제점을 제기한다. 즉 주어진 문화 생산물 가운데 피지배계층이 억압적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은 문화 텍스트가 소비되는 구체적인 일상의 공간에 주목하여, 대중문화가 일상생활의 실천적 차원에서 어떻게 전유되고 수용되며 그 생산적 실천의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트모던 계열의 연구들은 기존의 문화연구가 화두로 삼았던 거대 권력, 이데올로기, 거대 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연구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사변적이고도 이론적인 논의에 머물고 있어 이를 실제 가변적이고도 역동적인 문화 환경과 현상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부족해보인다.

 

2) 한국의 문화연구

서양의 경우에 비해 한국에서의 문화연구는 비교적 근래에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중문화는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되었다. 대중문화를 곧 󰡐대중매체의 문화󰡑로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의 대중문화 발전은 절대적으로 대중매체에 의존해왔다.

특히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방송매체였다. 1960년대에 본격화된 라디오는 영화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오락 중심의 대중매체로서 우리의 대중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에는 텔레비전이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 하에 국민의여가 생활을 책임지는 오락매체로 육성되었다. 군사독재 정부 아래에서의 대중문화는 대체로 국민의 󰡐정치로부터의 도피󰡑를 부추기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컬러 텔레비전의 등장은 대중문화의 확산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렇듯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된 우리 나라의 대중문화 시자은 매체의 성장과 더불어 짧은 시간에 양적인 팽창을 가져오긴 했으나, 그에 대한 논의는 대중문화의 사회적 악영향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외래문화의 여향 등 극히 부분적이고도 제한된 현실 비판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본격적으로 대중문화가 이론적으로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부터였다. 8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과거 정치, 경제 중심의 기존 논의를 새롭게 정리할 수밖에 없는 지각변동을 맞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 가운데에서 문화는 각별한 관심의 대항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특히 경제문제가 해결 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 문화적 현상들, 예를 들면 X세대, 미시족 등에 대한 관심과 미디어의 영향력에 주목하게 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커진 것이다.

이러한 판편에서는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문화연구의 시각이ㅣ 과거 정치, 경제를 설명하던 이론과 달리 현실적 운동의 측면에서 대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학자들을 중심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필두로 한 새로운 문화이론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문화적 현상들을 기존의 전통적 패러다임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식이 싹튼 것이다. 특히 종래의 시각을 부인,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이자 혁명적인 시각이었으며 이에 대한 막대한 관심은 문화연구의 확산에 기여했다.

대중문화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문화이론의 확산과 유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집단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1987년 노태우 정권의 탄생과 함께 운동의 목표를 상실한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정권 교체의 명분을 잃게 된 운동권 중심의 세력들로서 구 소련의 붕괴 등으로 과거 운동의 지향점을 잃게 되었고, 민주화를 바라면서 결집되었던 힘들이 분산되자 위기와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본 현실은 개선되지 않았고 지배세력은 여전히 자본을 바탕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을 장악하면서 자신의 지배구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들의 인식은 유럽의 문화연구가 밟아온 인식과 일치되기 시작했으며 문화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유포 방식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정치,경제 영역에서의 투쟁은 끝났을지 몰라도 문화를 통한 계급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결국 이들은 문화가 이데올로기 작동의 중심 영역이면서 또한 변혁의 꿈이 마련될 수 있는 󰡐신나는 싸움터󰡑라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름   비밀번호
 
비밀글
     16. 5장 정보․문화시대의 문화소비자운동
     14. 3장 대중문화의 현실과 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