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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47:03]  HIT : 1  

3장 대중문화의 현실과 대안

신국원

 

1. 문화시대의 명암

1970년대의 산업화와 80년대의 민주화 노력은 90년대에 문민정부와 더불어 이른바 문화시대를 가져왔다. 확실히 90년대는 앞선 시대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경제적 풍요와 사회정치적 자유로 인해 문화가 꽃피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경제 사정이 급작스레 악화되면서 그 분위기가 크게 위축되기는 했으나 오늘날 우리의 문화 환경은 과거의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비옥해진 것은 분명하다. 가난하고 어둡던 시대가 가고 삶의 여유 위에 각종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축복이요 수고의 보상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가난하여 먹고 자는 사간 이외에 생존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면 문화시대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정치를 비롯해서 사회 환경이 지나치게 억압적이거나 통제가 심해도 문화는 억눌리게 마련이다. 암울하던 시대 끝에 경제적 여권이 나아지고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의 조성으로 찾아온 문화시대를 기독교인이라 해서 달가워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과연 문화시대의 도래를 기뻐해야만 할 것인가? 새삼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요즘 그 동안 우리를 부풀게 했던 것들이 쓰라린 실망을 가져다 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간신히 임기를 마치고 퇴진한 문민정부의 참담한 모습이 그랬다. 독재를 청산하고 도덕성을 기치로 내세워 한때 국민 90퍼센트 이상의 지지와 기대를 모았던 김영삼 정부의 자랑스럽지 못한 종말은 모두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또 그 동안 우리를 한껏 부풀게 했던 경제대국의 꿈도 과장된 거품에 불과했다는 실상에 모두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혹시 그 경제와 정치를 바탕으로 해서 찬란하게 떠오른 문화시대의 속내도 비슷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삶의 여유와 자유를 가지게 되었을 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축하하는 일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또 그 여유를 채우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의 수요가 팽창하면서 자연히 문화산업이 급성장하고 문화산물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문화산업이 팽창한다고 해서 반드시 문화가 발전하고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홍수가 나면 물이 탁해지듯이 문화의 홍수 속에서 수준의 향상은커녕 문화적 환경만 자꾸 혼탁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대표인 손봉호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향락산업이 엄청나게 번창하고 향락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 한 증거로서 실제로 작년 한해 동안 공식 집계된 액수만 해도 약 4조원 가량이 향락산업에 쓰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어느새 분수를 모르는 과소비와 사치풍조가 만연하여 근면과 절약의 피와 땀으로 쌓아온 공든 탑을 일순간에 기초부터 흔들어놓는 격이 되었다. 그리고 문화생활이라는 것도 대개는 비생산적이고 심지어는 퇴폐적인 성향마저 짙어 도덕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위기는 이미 이러한 풍조 속에서 예견되고 있었던 것이다.

통계나 해설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이러한 불건전한 추세를 감지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골프나 해외여행과 같은 값비싼 여가생활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평범한 직장인들 사이에서조차 널리 유행되었으며, 우리 가정들에서 지출하는 외식 비용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경제 선진국의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 게다가 술집이나 카바레와 같은 향락업소들이 나날이 늘어만 가며 이제는 단란주점이라는 이름으로 주택가까지 침범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때는 접대부나 윤락여성의 수요를 채우지 못해 부녀자 납치가 극성을 떨기도 했다. 음란 비디오나 포르노 잡지는 우리 주변의 편의점이나 중고등학교의 교실에서조차 흔하게 돌아다니더니 급기야는 청소년들이 이를 흉내내어 제작한 비디오 테이프가 대량 유포되는 실로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특히 날로 늘어나는 저질 문화산업에 의한 문화 환경의 오염은 매우 심각하다. 영화나 잡지 그리고 스포츠 신문과 같은 오락물들뿐만 아니라 일간 신문과 텔레비전 등 안방의 매체들조차도 끔찍한 폭력 장면이나 낯 뜨거운 성애 장면들을 문화나 광고의 이름으로 무차별하게 배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 결과 우리 모두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정작 그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오염된 문화는 오염된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피하기가 어렵다. 그것이 우리 삶의 환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오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즉 오염된 문화는 우리 모두의 삶을 물질만능주의나 쾌락지상주의와 같은 저급한 가치 추구로 인도한다. 또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분수에 넘치는 향락을 추구하게 하여 과소비를 부추기고, 나아가 심하면 성범죄나 폭력이 증가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의 심신을 오염시키는 문화는 국가의 건전한 미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문화시대에 편승하여 퍼져가는 이런 문화 환경의 오염 현상은 기독교인들의 책임 있는 대응이 절실하게 요청한다. 항상 현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먼저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의 문화 현실의 배경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 진단하여 그에 맞설 기독교적 대안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날로 어둡고 부패되어가는 문화 속에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긴요한 준비이다.

우선 문화 환경이 오염에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오염의 근원을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날 문화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사상적인 원인이며 둘째는 상업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을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2.사상적 영향

현실 문화의 흐름 뒤에는 사상적 배경이 존재한다. 한 시대의 사상이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금세기 중반부터 문화를 이해하는 시각 자체가 여러 사상적 원인에 의해 바뀐 것은 문화 현실의 변화에 커다란 몫을 했다. 이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추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이 세계적인 추세가 어떠한 형태로 우리의 현실에 접근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문화는 주어진 재능을 연마하여 고도의 성취를 이룩한 가치의 구현이요, 그를 통해 삶의 질이 승화되며 교양이 형성되어 인간성의 완성을 지향하는 의식적 활동으로 여겨졌다. 이 고전적 문화는 생존을 위한 노동은 물론이고 과학과 기술, 심지어는 경제나 정치도 배제시킬 만큼 특히 정신적인 가치 추구와 예술의 좁은 영역에 국한되었다. 물론 그런 문화의 개념에는 고급스러운 귀족적 취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배타적인 성향이 있었으며, 문화가 서구의 문명사회의 전유물인 양 여겨지는 폐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를 자연적 상태와 구별하여 인간성의 성숙과 고양을 가져오는 의식적 행위로 파악하여 문화에 교양, 교화, 교육의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은 고전적 문화 개념의 강점이라 하겠다.

이 고전적 문화 개념은 금세기 중반부터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문화의 범주가 확대되기 시작한 데 기인한다. 즉 종래에는 주로 정신적이고 고도로 세련된 성취만을 가리켜 문화라고 한 반면에 오늘날에는 일상적인 삶의 내용 전체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서강대의 강영안 교수의 지적과 같이 이러한 추세는 문화인류학의 영향과 관계가 있다. 그것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여러 형태의 문화를 비교 연구해볼 때 문화가 단지 발달한 문명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어디서나 나타나는 공통적인 것이며, 정신적 활동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행위를 규정하는 토대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본래 주어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식적 활동을 지칭하는 것인 만큼 인간의 모든 활동 전체를 문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 개념의 확대와 함께 인간성의 성숙과 고양이라는 문화의 본래적 이상은 더 넓은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 문화 개념의 확대로 인해 교양과 같은 고급 가치가 배척 되고 오락이나 향락 등의 저급 가치가 문화의 이상으로 대치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오늘날 고전적 문화 개념의 쇠퇴와 더불어 문화의 질적 판단 기준 자체가 하향적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즉 이처럼 확대된 문화의 개념은 자칫 문화의 이상을 낮추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또 문화인류학은 단지 문화의 범위만을 확대해준 것이 아니라 문명과 야만이라는 종래의 획일적 구분을 지양하고 다양한 문화의 교유한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문화상대주의의 길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를 과학기술처럼 하나의 척도나 가치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상대주의는 일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환경과 시대를 초월해서 인정해야 할 보편적 가치 기준이 있음을 부정하거나 도외시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모든 문화의 가치를 상대적으로만 평가하려 한다면 식인 습관이나 고려장과 같은 악습도 비판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문화상대주의 곧 서구 사회 내부의 다양한 문화들에 대한 인식과 가치 판단에도 변화의 여파를 가져왔다. 특히 1960년대 이래 뜨거워진 고급문화 대 대중문화 사이의 이른바 문화전쟁논쟁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한 면을 반영한다. 이 논쟁에서 결국 고전적 문화 개념은 귀족주의 내지 엘리트주의적 발상으로 비판을 받아 문화의 이상과 대표로서의 자리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이후 문화하면 대중문화를 주로 의미하게 된 것은 문화개념의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주로 독일의 프랑크프루트학파(Frankfurt)나 영국의 버밍햄 연수소의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이론도 문화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사고의 기본 전제가 유물론적인 이들은 문화를 정신의 산물이나 성취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의 경제나 정치적 조건의 결과로 이해한다. 나아가 이들은 문화를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면보다는 계층간의 상이한 이해가 상충하며 부딪치는 면을 강조하여 심지어는 문화를 전쟁터로 인식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문화연구는 고전적인 문화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중문화 이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이렇게 변화한 문화연구는 실제로 정치학과 흡사한 모습을 띠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문화연구를 대중들의 삶을 이해하되 그것에 연관된 권력구조를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대중문화를 장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한다.

어쨌든 위에서 열거한 원인에 의해서 파급되기 시작한 문화 개념의 변화는 곧 서구 사회 내부의 다양한 문화들에 대한 인식과 가치 판단에도 변화의 여파를 가져왔다. 게다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도 문화 전반에 급격히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르네상스와 지리상 발견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형성되어 근래까지 약4세기 넘게 서구 사회를 지배해온 근대문화에 대한 반발을 기조로 한 사상으로서, 문화의 기본 틀을 바꾸려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히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서구 문화를 형성해온 기초 체계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고 나아가 해체하고자 함을 특징으로 한다. 이로 인해 이성주의와 객관주의를 근간으로 통일성을 이상으로 삼던 근대문화와는 달리 다원성과 개성이 강조되어 상대주의 성향과 파편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이성적 기준이 약화 되고 고도의 감성적 문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세계적 조류가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90년대를 특징짓는 이른바 문화시대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여유라는 물질적 조건을 전제로 벌어진 단순한 즐거움의 축제만은 아니었다. 문화시대와 함께 전래 없이 특이한 사회 문화적 변화와 갈등이 이미 여러 가지 모습으로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사실상 문화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90년대 초 문민정부시대에 접어들면서 민주화투쟁으로 대표되던 이념투쟁의 운동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그 주력이 문화운동으로 전환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현실문화연구’ , ‘문화연구같은 급진적 문화이론 연구자들의 활발한 연구 활동이나 저술이 바로 그러한 변화의 예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아도르노(Theoder W . Adomo)나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같은 신마르크스주의자나 그람시(Antonio Gramsci), 또 버밍햄 연구소 등에서 발전된 주로 좌파적 문화이론에 의지하여 그들의 실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즉 이들은 문화가 사회 정치적 전략이라는 이론에 입각하여 사회변혁운동의 새로운 장으로 문화연구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 일제시대 이래 지속되어오던 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일부 젊은 의식 있는영화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위헌결정을 이끌어내면서 마침내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런 사건은 사상운동이 문화 쪽으로 그 불씨를 옮겨가는 분명한 증거이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은 주로 예술의 영역을 사회 통념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율을 쟁취하는 이론적 구실로 흔히 사용된다. 마광수, 장정일로 이어지는 외설이냐 문학이냐라는 논쟁은 그래도 수준이 있는 편이다. 신문소설, 스포츠 신문과 성인용 잡지, 만화 같은 명백한 음란물조차도 이런 이론을 내세워 국가와 사회적 검열을 배격하거나, 건전한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시민적 양식에 근거한 항의를 불식시키고자 한다. 심지어는 동성애자들도 성정치이론을 앞세워 모든 성행위의 동등한 권리 획득을 새로운 인권운동의 과제인 양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좀더 일반적인 변화는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는 대중문화가 문화의 대표성을 띠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삶의 모든 의식적 행위를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시대의 화제는 연예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대량 보급과 높아진 관심에 모아진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대중들의 삶과 질과 이상이 점차 고상해지며 아름다워지는 것이 대중문화라면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문화란 문화의 대중화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오늘날 대중문화의 특징은 문화의 상업화에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대중문화의 도래와 더불어 문화는 대중적 소비를 위해 양산되는 체계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중문화는 곧 상업적 문화라는 공식이 유래한다. 그리고 문화의 상업화는 문화의 질을 떨어뜨리고 문화 환경을 오염시키는 좀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원인이 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3. 상업주의의 영향

 

대중문화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그것이 대중들의 것이기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 대중문화는 상업화되면서 그 질이 낮아진다. 대중문화는 대부분 대량으로 생산되어 비교적 값싸게 판매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돈으로 사서 즐기는 문화이다. 미국의 대중문화 연구자인 켄 마이어스(Kenneth A. Myers)는 대중문화의 중요한 특징을 즉시성이라고 했다. 대중문화는 지금 당장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만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상업화된 대중문화는 고전적 문화가 본래 요구하는 고도의 성취를 위한 수고를 기피하는 문화이기에 그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말만 대중문화로서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일 뿐 사실상 그것은 대중들에 의한 대중의 문화는 아니다. 또 그것은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 의해 대중들에게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문화이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영화는 극히 제한적인 그룹에 속한 감독과 제작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데, 이들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대중이라 볼 수 없는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돈으로 사서 즐기는 상업적 대중문화는 수동성과 오락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수동성은 판매되는 것을 사서 누리는 것에 기인한다. 또 상업적 문화는 수동적이므로 교양이나 교육적인 면보다는 오락적인면이 더 두드러지게 된다. 그것은 일(노동)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또 일도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해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세속화 사회의 한 특징이다. 여기에서 매우 유해한 하나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즉 여유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을 하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오락의 강도를 높이면 더 많은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니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구조에 의하면 최소한 비용으로 최대의 오락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최선일 가능성이 높다. 한 묶음에 음악과 영상과 이야기 등의 모든 오락적 요소들을 제공하는 영화나 텔레비전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오늘날 대중문화의 핵심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소 비유가 지나칠지 몰라도 즉시성과 오락성을 특징으로 하는 상업화된 문화는 매춘과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은 남남이던 한 쌍의 남녀를 부부라는 공동체로 묶어주어 사회의 기틀이 되는 가정을 가능하게 만드는 고귀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헌신 없는 일시적이고 즉시적인 쾌락의 도구로서, 그것도 돈으로 사고 파는 관계로 떨어져버린 것이 바로 매춘인 것이다. 따라서 상업화된 대중문화는 특별한 재능을 통해 인간에게 아름다움의 체험이나 재주를 함께 누려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고귀한 기능을 하는 대신 즉시적인 감각적 오락을 팔고 사는 산업이 되고 말았다.

물론 상업화된 대중문화라고 해도 거기에는 단지 감각적인 쾌락이나 오락만을 팔고 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거기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기에 더욱 큰 문제이다. 어둠 속에서의 춤을이라는 문화연구서를 낸 미국의 칼빈 대학 교수팀은 대중문화에도 다른 문화처럼 정체성(identity)' 친밀감(intimacy)' 을 제공하는 기능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바로 이러한 기능 때문에 대중문화는 성인뿐 아니라 아직 자기 정체성의 정립이 필요하고 또 여러 원인으로 외로운 청소년들에게 무척이나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즉 청소년들은 대중문화의 화려함과 오락성만큼이나 근본적 기능으로 인해 대중문화에 애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연구팀은 대중문화의 이러한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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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4장 진보적 대중문화이론에 대한 평가
     13. 2장 대중문화와 윤리 그리고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