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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46:14]  HIT : 49  

2장 대중문화와 윤리 그리고 신앙

 

방선기

 

요즈음 텔레비전의 쇼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혼을 빼앗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영화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텔레비전 드라마만 보더라도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겉으로 나타난 것만으로도 우리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으니 좀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심각할 것이다. 어느 사회나 대중들의 정서를 채워주는 문화는 있게 마련이고 그 문화는 어느 정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장래를 걱정할 만화 지경에 이르른 듯하다.

양식이 있는 크리스천들은 이런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의 현실에서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크리스천이 대중문화의 현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별 생각 없이 대중문화의 현실 속에 그냥 빠지고 있다. 별 생각 없이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그와 정반대로 이런 현실을 보지 않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는 크리스천들도 적지 않게 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로새서 3:2)눈 말씀을 오해해서 세속문화와 절연한 채 살아가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태도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양극단은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똑같이 잘못되어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대로 이 세상 속에서 살며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면서도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요한복음 17:15)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는 주변의 문화적인 현실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크리스천들이 주변의 대중문화에 대해 맨 먼저 보이는 죄악으로 가득 한 문화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다. 때로는 구체적인 문화의 현실을 보고 흥분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정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의 현실에 대해 단순히 반응(react)을 하기보다는 대응(response)하기를 원하신다.

교리적이거나 윤리적인 차원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취한 행동은 이런 태도에 대한 아주 멋진 본보기가 된다.

바울은 아덴에 가서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분하였다.(사도행전 1:167). 죄악으로 물든 문화를 보고 크리스천이 보여야 할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감정적인 반응(react)에 그치지 않고 아덴 사람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대응했다(response). 그는 우상을 섬기는 아덴 사람들을 향해 종교성이 많음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종교와 문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결국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바울의 전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접촉할 수 있는 대중문화를 향해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자세이며 전략이다. “크리스천들이 오늘의 대중문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젓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그가 아덴의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의 형편을 보며 가졌던 세 가지 안목으로 우리에게 대답해준다.

 

1. 신앙의 눈으로 본 대중문화

바울이 아덴에서 본 것은 성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우상들이었다. 그 우상들은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바울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아덴 사람들이 그것을 향해 아무리 경건한 자세로 경배했더라도 바울의 눈에 보인 그것들은 한낱 우상에 불과했다. 지금도 우리 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어느 곳을 가도 자리잡고 있는 우상을 보면 크리스천들은 으레 바울이 느꼈던 것과 같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런게 오늘날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우상은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종교적인 우상만은 아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회의 제반 요소 속에 우상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집요한 우상이 바로 대중문화일 것이다.

우상(idol)" 에 대한 사전의 정의는 다양하다. 문자적으로는 신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것으로서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지거나 사용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실체가 없는 모양이나 형상이라든가 지나치게 마음을 쏟는 대상이나 사람, 혹은 열정적인 헌신의 대상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를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우상은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

1)우상 종교를 전파하는 대중문화

우상의 가장 전통적인 정의는 첫째, 무엇이든지 신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사람들의 예배의 대상의 된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바울이 아덴의 거리에서 보았던 우상들을 우리는 현재의 대중문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만나고 있다. 한동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귀신이라든가 영적인 존재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었다. 또한 무속인들이 과거와 달리 공영방송에 등장하곤 한다. 모더니즘의 한계를 지적하는 듯한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한편으로 크리스천들에게 세상을 향한 영적인 지회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뉴에이지 운동을 비롯한 유사 종교운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이런 악한 영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대중문화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강력한 힘 때문에 일반인들은 물론 크리스천들조차도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악한 영에게 미혹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중문화 시대에는 사도 요한의 경고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나라.”(요한일서 4:1)

2)유성숭배를 강요하는 대중문화

우성을 실체가 없는 모양이나 형상 이라고 정의한다면 대중문화야말로 현대인들이 그런 우상에 빠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에게 실재가 없는 허상을 계속 보여주고 그것이 마치 실재인 양 어기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1997년에 사고로 사망한 영국 왕태자비 다이애나의 장례식을 생각해보자. 그때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그 애도는 과연 누구를 향한 애도였는가? 마치 절친한 사람의 죽음처럼 애도한 것이 당사자인 다이애나와 그의 가족들을 향한 애도였을까? 아니면 유명인 혹은 자신들의 우상을 잃은 데 대한 슬픔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현대 대중문화의 문제이다 온갖 광고들은 실제 물건보다 이미지를 더 중시한다. 화장이나 패션, 성형수술 등이 그것의 다른 표현이다. 오락기계들, 사이버 공간, 이 모든 것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사람들이 찾게 된 것이다. 컴퓨터 통신이여야말로 대상을 바라보지 않고 교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 때문에 현대사회는 실제로 늘 옆에 있는 사람보다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비 인격체와 가까워지며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다른 유사공동체가 늘어나게 된다.

이렇듯 대중문화가 발단된 사회에서는 실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은 과거의 우상숭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성경이 우상에 대해서 표현한 것은 오늘날 대중문화에 그대로 적용된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은화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편 115:3-8)

창조주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이런 허상이 계속 창조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재하지 않은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시대에 크리스천들은 정말 실재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이과 그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4-25)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대중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크리스천에게는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3)우상이 된 대중문화

우상에 대한 마지막 정의에 따르면 우상은 지나치게 마음을 쏟는 대상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오늘날 대중문화 자체나 대중문화가 만들어내는 스타야말로 우상이 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은 그 문화현상 속에서 우상을 감지해낼 뿐만 아니라 그 우상을 섬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신앙적인 자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은 어느 집이든지 안방이나 응접실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우상이 되었다. 그것을 통해 소개되는 드라마나 쇼프로의 음악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이 되어버렸다. 이 우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 빼앗아가고 있다. 이렇듯 대중문화는 우리가 그 내용을 평가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우상이 되어버리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우상은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락을 추구하는 대중문화에 길들여지면 거룩하고 초월적이며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거나 회개와 순종을 요구하는 그의 명령에 반응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견디지 못하고 들은 말씀에 대해 영적인 반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생활에서 대중문화가 우상이 되어버린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실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앗수르 왕이 이방인들을 사마리아 땅에 옮겨다 놓은 후에 생겼던 상황과 흡사하다.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는지 그 민속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열왕기하 17:33)

대중문화 자체가 우상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생활에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면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때로는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과감한 결단도 필요할 것이다.

2. 윤리의 눈으로 본 대중문화

바울이 아덴에서 우상들을 보고 흥분한 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생긴 감정적 반응이다. 그런데 그의 반응 이면에는 그 당시의 우상 종교에 짙게 스며든 비윤리적인 죄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사리 그 당시의 우상 종교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적인 진리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많았다. 그 당시 역사를 돌아보면 이방 신을 섬기는 곳에는 항상 성적인 타락이 따라다녔으며, 우상의 번창은 항상 돈벌이와 맞물려 있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할 때 바울이 에베소 상도들에게 한 권면은 정말 실감이 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 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는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에베소서 4“17-20)

당시 우상 종교를 섬기는 것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던 성도들에게 한 바울의 이 권면은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윤리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잘 가르쳐주고 있다.

1)윤리가 설자리를 잃어버린 대중문화

이방 종교의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성적인 죄악을 지적한 것은 바로 당시 고린도 지방에 만연하던 이방 종교의 제의와 결부된 난잡한 성적 방탕과 관련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주를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한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린도전서 6:9-10, 15-17)

크리스천들이 대중문화를 윤리적인 눈으로 볼 때 대중문화의 우상성과 비윤리성은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가까이 지니는 문제의 정도는 거의 비례하는 것 같다. 과거의 대중문화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즈음 대중문화를 보면 그나마 최소한의 기준마저도 사라진 느낌이다.

물론 문화를 윤리의 잣대로만 잰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문화를 통해 인간의 창조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 사람들이 도덕적인 무지(moral illiteracy)에 빠져서 윤리적으로 무감각(ethical insensitivity)해지면 그 결과는 사회적인 혼란(social chaos)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윤리적인 기준을 잃어버린 서구사회의 혼동은 바로 이런 타락의 과정에 빠져든 대표적인 실례가 된다.

대중문화에 가장 문제가 되는 윤리적인 문제는 역시 성윤리 인간의 존엄성 문제로서 흔히 예술을 가장하고 나타나는 외설물, 음란물 문제와 스트레스 해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폭력물에 나타난 비윤리성의 문제이다.대중문화는 동기 가체가 자극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마약과도 같이 점층적인 상승작용을 하면서 섹스와 폭력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그 대중문화 매체는 시장성을 잃게 되어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크리스천들은 분명히 성경에 비추어 비판해야 한다.“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로니가전서 5:22)고 하신 말씀은 비록 문화라는 틀을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강조되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악의 정의를 종교적인 기분으로 강요할 수는 없으나 선과 악의 분별을 무너뜨리는 시도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

특히 윤리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중문화의 결과물을 놓고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아무리 만든 사람의 의도가 좋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면, 그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 태도야말로 문화산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최소한의 양심이며 책임이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중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한편 적극적으로는 대중문화가 윤리적인 면에서 순기능을 해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여기서 문화가 가지는 독특성을 이해해야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드러낼 때 죄악을 표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때 문화를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로(즉 예술성으로) 죄악에 대해 죄악 그 자체로 표현하는 것과 사람을 자극하거나 다른 사람을 그 죄악에 동참시키려는 지극히 상업적인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문화가 윤리적이기 위해서 악에 대한 표현 자체를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아마도 세상의 모든 악이라는 악을 다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악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많은 대중문화는 악에 대한 표현을 통해 오히려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그 악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도록 유혹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섹스 소재 시사물이나 토크 프로들은 바로 이점에 문제가 있다. 반대로 흔히 대중문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폴리스 드라마라 할지라도 정직, 의무, 용기, 정의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유익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윤리성이 이슈가 될 때면 항상 거론되는 것이 청소년들이 그 문화를 누려서 생기는 문제이다. 우리는 여기서 똑같은 작품이라도 누리는 사람의 계층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로마서 15:1)라는 바울의 권면은 대중문화를 통한 자극과 유혹에 약한 청소년들을 향한 성인들의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말씀이다.

2) 경제논리에 지배되는 대중문화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당했던 핍박은 아데미 우상과 관련된 사업가들의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사도행전 19:23-27). 그들이 바울 일행의 전도를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자기들의 우상에 대한 종교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관심사는 자기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사수하는 것이었다. 종교, 문화가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오늘날 그 정도는 자못 심각하다. 사실 오늘날 대중문화의 문제도 그 핵심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경제논리에 도달하게 된다. 현재의 대중문화는 철저히 시장경제에 기초하고 있어서 대중문화의 방향을 이끄는 결정적 힘은 시장경제 논리이다. 대중문화의 내용은 철저히 대중의 소비에 따라서 그 방향성이 경정되며 심지어는 고급문화까지도 점차 그런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 솔제니친은 러시아 내의 대중문화의 확산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현재의 형편을보면 예술가들은 최고의 전문가나 식견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서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데 필요한 자극이 필요 없다. 대신에 그들은 저급한 요구를 따라서 하게 되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유지하기 위해서 대중이 원하는 대로 따라서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대중적인 문화의 속성을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민주적인 예술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민속예술처럼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문제가 되는 것은 도둑의 심보를 가지고 비양심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파는 것이다. 많은 예술작품이 점점 저급한 물건이 되어버리거나 원시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작품들이 문화 소비자들의 중간치를 가리키는 여론조사의 도움을 얻어서 양상된다. 그리고 그것이 틀이 정해서 생명력이 없는 미디어를 정당화해서 결국은 점점 더 질을 떨어뜨린다.”

그가 지적했듯이 이제 현대사회의 대중문화계는 문화 자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치중하는 방향으로 전략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크리스천들로부터 이렇게 변한 사회환경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사회주의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 체제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돈이 모든 일의 근거가 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선지자적인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6:9)라는 바울의 경고는 개인의 생활에만 적용해야 하는 교훈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말씀이다. 문화가 돈만을 목표로 추구한다면 문화의 본질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당시 바울이 이방인들의 문화를 보고 탄식하면서 성도들에게 권면했던 말씀들은 이런 윤리적인 차원에서 현재의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크리스천의 태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정제하지 못하며 사나오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3) 복음적인 윤리를 필요로 하는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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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3장 대중문화의 현실과 대안
     12. 1장 대중문화시대의 그리스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