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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8-05-14 00:45:26]  HIT : 39  

1장 대중문화시대의 그리스도인

    

 

    

 

광화문과 예술의 전당 앞에는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고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는 캐치 프레이즈와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21세기에 진입하는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문화 대통령의 이미지를 내걸었고, 문화 이론가들끼리 󰡐대중문화 죽이기, 살리기󰡑논쟁이 벌어졌지만,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처음으로 김대중 문화읽기: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라는 문화평론서를 출판한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게 당선되었다. 과연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정말 문화의 세기는 오고 있는 것인가?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는 것일까? 역시 진보론자들은 항상 과거보다 미래가 더 개화되고 발전된 문화를 소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은 마치 지금까지는 문화의 세기가 아니었고 21세기야말로 인류가 처음으로 문화를 향유하게 되는 세기가 되리라는 그릇된 기대감을 줄 수 있다.

실로 문화 없는 인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류의 역사는 문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항상 존재하여 왔으며, 반드시 고대문화가 저급하거나 열등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문화 순환론이나 󰡒옛것이 좋았다󰡓는 문화 복고론도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서구 현대문화는 복구주의적인 르네상스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더욱이 현대 인류학은 원시문화와 발달된 문화라는 구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그러므로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말할 때, 그 문화란 일반적인 의미의 문화가 아니라 특별한 형태의 문화를 가르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의 현대 문화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21세기 미래 문화는 어떠한 것일까? 현대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성격은 아마도 󰡒대중문화(mass culture)"라는 것이며, 이러한 형태의 문화는 다음 세기에 더욱 심화되고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거의 반수가 같은 시간에 같은 국제 경기를 보면서 같은 소리를 지르고 같은 애를 태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열광하고, 엄청난 관객이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같은 정서를 나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서나 컴퓨터 앞에서 앉아 같은 정보를 나누고 서로 대화한다. 이런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현대인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깨어있는 시간을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러면 이러한 대중문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기독교가 단순히 지식적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 즉 삶의 문제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불신자(不信者)와 다른 삶을 살아야 하며 다르게 시간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불신자와 똑같은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똑같은 대중문화를 똑같은 방식으로 즐기며 살아간다면, 기독교 신앙이란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허식일 뿐이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적인 문화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모든 시간에서 우리 삶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 문화생활에서도 주님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적인 오랜 세월 여러 형태의 문화 속에서 존족하고 발전해 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중문화 역시 기독교에 근본적인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적 순종을 위하여 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적응하는 한편 그리스도에게 거역하는 요소를 정화하고 순종하는 문화로 개혁해나가는 작업이 요청된다.

 

1.대중문화란 무엇인가?

 

현대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평가는 크게 두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상반된 입장이기보다는 대중문화의 두 측면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라고 볼 수있다. 하나는 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적 견해이다. 맹용길 교수는 기독교 신앙과 대중문화라는 글에서 대중문화를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문화라고 정의한다. 그러면 대중이란 누구인가? 그는 대중을 대다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집합체로서 사회적 지위, 계급, 학력, 재산 등의 사회적 장벽을 초월해서 구성되는 사람들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이해한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의 근거로 드디어 문화적인 대중의 시대가 도래 했음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문화가 소수 구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민주주의의 도래와 함께 대중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문화에 적용되어 일어난 현상으로, 과거에 부르주아와 엘리트만을 위한 불평등하고 자만한 소수 문화를 극복한 보편적 은총이라고 해석한다. 인간의 타락과 죄악은 하나님께서 평등하게 창조한 인류를 지배자와 피지배자, 귀족과 천민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으로 분리하고 사회적 신분을 세습하고 문화를 소수 지배계급의 전유물로 만들었으며, 다수의 대중은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었다.

더욱이 힘없는 대중은 문화를 모르는 미개인 취급을 당하고, 그들이 즐기는 문화는 저급문화로 분류되어 천시되었다. 또한 침략적인 식민통치하에서 지배자의 문화는 우월한 것으로, 피지배자의 문화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 인류학은 이것이 얼마나 제국주의적인 것이고 잘못된 문화인가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 시대가 종식된 지금도 그 여파로 형성된 서구화의 물결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어 서구 문화의 우월성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노예의 음악으로 유입된 재즈가 오히려 미국 음악을 지배하고 랩송이 한국 청소년 음악을 지배하는 현상 등은 대중문화가 과거의 정치적 차별을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민주화와 독립은 대중이 주도하는 대중을 위한 문화의 민주화를 성취하는데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점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예술가들이 소수만을 위하여 봉사하였으나, 그리고 신분적인 차이 때문에 문화적 혜택을 유린당하고 차별당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었다.

대중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원동력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일어난 과학의 발달이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해서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음악회에 참석해야 했지만 지금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거의 완벽한 음질을 가진 테이프나 CD를 값싸게 구입해서 어디서나 반복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안방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

고대에는 서민이 성경한 권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출판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가까운 서점에서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는 소수의 지배계급만이 의료 혜택을 누렸으나 이제는 누구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런 혜택은 더욱 확대되고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대중화는 인류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보편적 은총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이런 대중의 문화적 향유는 산업혁명과 자유시장 체제라는 현대 경제의 민주화와 대중화에 의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과거 한국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절대 다수의 빈민층이 있었지만 경제발전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빈민층이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아들은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면 대중문화를 정죄하는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손봉호 교수는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라는 글에서, 대중문화를 󰡒대중이 만들어 내고 대중이 즐기는 문화󰡓라고 정의하지만 대중에 대한 이해는 매우 다룬다. 그에게 대중이란 대부분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성격을 가진 인간군󰡓을 가르킨다. 이 거대한 인간 집단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대량 생산과 대중 매체에 의하여 생겨난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소외된 인간군󰡑이며, 따라서 대중문화는 󰡐소외된 문화󰡑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대중에 속할 수 없다󰡓라는 논리로 기독교인은 대중문화를 수용하거나 향유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나 문화 이론가들은 대중문화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심지어 󰡐문화전쟁󰡑까지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대중문화가 비기독교적이며 그리스도인이 비판적으로 대해야 하는 형태의 문화인가?

첫째로 문화의 대중화는 공동체와 자아의 상실을 유발시킨다. 문화를 모두가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이면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문화는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인간이 공동체를 생성하고 서로 교제하며 사는 삶의 방식이 그 공동체 특유의 문화를 산출한다.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독특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며 독특한 옷을 입고 독특한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독특한 예의와 의식을 거행하며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각 민족과 공동체가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

고대로 갈수록 생활공동체의 규모는 작다. 산업혁명과 도시화 이전에는 인류가 서로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부락이나 성읍 공동체에서 그를 나름대로의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다.

그러나 문화의 현대적 대중화는 문화적 공동체를 무한히 확대시켜 세계 전체에 이르게 하였다. 과거에는 문화적 공공체가 곧 삶의 공동체였으며, 문화는 공동체 생활의 수단이며 공감대를 이루는 표시였다. 그러나 현대의 무한 대중화는 문화의 공동체와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삶의 공동체를 분리시켰다. 그 결과 인격적 공동체를 파괴하여 공동체적 교제를 증진하는 방편으로 함께 놀이를 즐기고 함께 노래하며 함께 구경하기보다 혼자서 문화를 즐긴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함께 영화를 관람할지라도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제각기 관람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화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하고 문화가 공동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종속되게 만든다. 공동체의 상실은 인격적인 자아의 상실을 가져오고 인생을 무의미하고 고독하게 만든다. 너무 대형화된 공동체에서 개인의 요구나 필요는 무시되고 군중심리가 작용한 인기에 지배당해 그 속에 자신을 내던진다. 자기의 능동적인 결정에 의해서라기보다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대중 안에 있으려 한다. 대중이 문화의 주체가 아니라 대중성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조작 당한다. 문화를 조직하는 사람들 조차도 대중성의 논리에 지배당한다.

문화의 대중화는 획일화와 인기에 무조건 종속되는 전체주의 논리에 희생당할 위험이 있다. 인류는 전체주의로 인한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어 바벨탑을 쌓은 인류를 분리시켜 다양한 민족과 공동체로 살면서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인류의 멸망을 막으셨다. 정치적인 세계 제국의 출현이나 문화의 대중적 획일화는 죄에 종속된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그리고 문화의 공동체가 끝없이 확대됨으로써 발생하는 정보와 문화의 대량화는 인간의 수용한계를 넘을 뿐 아니라 감정과 의지는 둔화되고 인간성은 서서히 파괴된다.

 

둘째로 현대성은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위험이다. 대중문화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현대라는 특정한 시대에 일어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서, 현대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본질적 요소인 것이다. 앤소니기든스(Anthony Giddens)현대성과 자아정체성에서 󰡒현대성은 산업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특징은 시간과 공간의 분리, 탈피 그리고 성찰성에 있다󰡓고 분석하였다.

20세기는 산업 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갈등이 야기되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였으나, 80연대에 접어들면서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둘 다 경제주의라는 승리로 결말을 맺고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둘 다 결제주의라는 시대정신이 낳은 쌍둥이였고 사상적으로는 공히 물질주의의 지배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물질주의가 지배한 20세기를 거치면서 인류문화는 점차 상업적인 문화로 변질되었다.

이제 문화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상품가치가 문화를 가치를 결정한다. 과거에 문화는 경제와 무관한 문화였으며, 오히려 제정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대중문화는 산업의 한 분야로서 거대한 경제규모를 가진 고도의 부가가치산업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비디오나 카세트, CD는 끝없는 복제를 통하여 손쉽게 이익을 취할 수 있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대량 생산과 대량 보급은 곧장 시청료나 광고료, 정보료나 판매 수입금과 비례한다.

대중매체의 보급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대중문화의 경제 규모도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상업성은 자연히 대기업이나 정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부르는 데는 경제적인 관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오락이나 흥행뿐 아니라 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기본생활에서도 현대적 패턴으로 정착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공장에서 생산한 음료나 식품을 먹고 마시며, 한 디자이너가 제작한 한 패턴으로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낸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며, 같은 설계사와 같은 건축회사가 지은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가구와 색상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대중문화란 과거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현대에는 과거의 오랜 신분적 질서가 파괴되고 산업을 통한 부의 축적과 자본주의적 힘의 질서로 재편됨에 따라 거대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으며, 급격한 신분 상승을 위한 경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경쟁은 현대사회를 위한 역동적으로 만드는 한편 문화형태를 매우 위험하게 만들기도 했다. 문화는 산업화되어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였고, 따라서 거기에 종사하는 문화인들은 부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기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음악등 모든 현대문화는 시청률과 판매량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런 자본주의 논리와 기회주의적 인기 조작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치부와 신분 상승을 위해 대중의 기호를 조작하고 죄악성을 부추기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고도로 경쟁적인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항상 지쳐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분주하게 뛰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과거의 전원적 편안함은 현대인에게 낭만적 회향에 불과하며, 피곤한 도시생활을 불평하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현대인은 항상 피곤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채 축적되는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고, 피곤을 풀어주고 고독과 무료함을 달래는 도구로서 문화를 이해한다. 그렇게 때문에 현대인에게 문화는 재미있어야 한다. 공동체 안에서 인격적 교제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만족이 결핍되어 있는 불안한 현대인은 문화에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추구한다.

실로 최로의 인류 문화는 하나님을 떠나 관계가 단절되면서 극도의 불안을 느꼈던 가인과 그 후예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현대문화는 그 자본주의적 경쟁성 때문에 좀더 재미있고, 괘락을 줄 수 있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문화를 개발하게 되었고, 따라서 좀더 자극적인 섹스와 폭력이 갈수록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현대문화속에 나타나는 광기와 혼란은 현대성의 본질적 불안을 반영한다.

현대 산업사회가 가져온 인간의 소외와 비인간화는 문화와 윤리를 분리시켰다. 현대문화는 로고스적 합리성이나 윤리성을 배제하고 재미와 인기가 지배적인 원리로 작용한다. 그리고 현대인의 인간성 소외는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인간을 대량으로 산출하였다. 자본주의 논리에 종속된 현대성은 예술과 윤리를 분리시키고 문화를 무윤리적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셋째로 대중문화가 의존하고 있는 테크놀러지의 문제이다. 현대문화는 과거의 문화와 연속성을 가지지만, 지난 수천 년의 인류 문화와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는 급진적인 문화현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산업 혁명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와 테크놀러지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 급속히 형성되었으므로 󰡐기술문화(technological culture)'라고도 부른다. 고대나 중세에도 테크놀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 기계문명과 기술문화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발전을 보이고 있다. 기계와 기술을 발전은 자연히 관련 매체를 사용한 문화의 발생을 가져왔다. 현대문화의 대표적인 예는 아마도 텔레비전이나 오디오, 비디오, 또는 컴퓨터를 통한 문화형태일 것이다. 근대문화가 인쇄혁명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현대문화는 고도의 테크놀러지를 사용하는 전자제품에 의해서 발생하였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한 기술문화는 대량 생산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대중매체를 소유한 모든 대중이 문화를 공유하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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