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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7-01-02 12:36:15]  HIT : 83  

기독교교육산책 9


화목하게 하는 교육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지난 호에서는 교육과정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단마다 공과를 통해 교육과정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교육을 담담하는 교사는 공과와 설교를 넘어서서 무엇을,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 나름대로 큰 그림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화목’입니다.

1. 신앙의 핵심으로서의 화목과 대상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깨달아서 신앙과 사랑으로 반응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화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토니 회케마(Anthony A. Hoekema)는 인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삼각구조로 설명하였습니다. 즉 인간이 된다는 것은 ①하나님을 향하는 것 ②이웃을 향하는 것 ③자연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연결되어 있고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랜돌프 크럼프 밀러(Randolph Crump Miller)도 “기독교교육의 목적은 전인(全人)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람이 전인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들이 안정되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있을 때...인간과 그의 환경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있을 때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먼저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인간창조의 이야기는 󰡐인간󰡑에 관해 말하기 전에 󰡐인간창조󰡑에 관해 말합니다. 즉 창세기를 읽어보면,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기로 결심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26). 이 말은 창조주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관련을 맺는 존재를 만들기로 결심하셨다는 사실을 지시합니다. 즉 이미 자신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귀시는 삼위일체의 형식을 가지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 자신처럼 당신의 말씀을 듣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피조물, 당신과 교제할 수 있는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인간과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이러한 관계로부터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갖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자신의 편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예배하도록, 하나님에게 기도, 감사, 응답, 반응하도록,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게 응답함으로써(Respond), 책임있는 삶(Responsibility)을 살아야 합니다.
온 세계를 두루 살펴보면, 인종마다 풍습과 습관, 언어와 종교가 다 다르지만, 한 가지 일치하는 점으로서 가는 곳곳마다 제단이 없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고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결정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동물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종교행위가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절대자를 찾고 부르고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날 겉으로는 절대자를 부인하는 현대인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절대자를 모시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자를 극구 부인하는 사람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황금이나 인기, 권력이나 사랑,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먹까지 절대로 신봉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우상, 거짓 신이라도 섬겨야 할 존재이기에, 손오공이 뛰어 보았자 삼장법사 손안에 있다고 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 보았자 또 다른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을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도피할 수 없는, 우리 앞에 절벽과 같이 우뚝 서 계시는 나의󰡐영원한 당신󰡑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간은 '동료인간'과의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세기 1:2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고 실현되는 또 다른 관계는 인간의 성적인 차이와 사귐에 있습니다. 인간이 남과 여라는 두 성(性)을 갖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생활은 두 성(性) 안의 그의 존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남녀 성의 구별과 결합은 모든 인간관계, 가족관계, 사회관계의 토대요 출발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독자적, 개체적 인간은 반쪽 인간이다󰡓(W. Zimmerli)고 말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만, 인간이 사회적인 존재, 사귐으로 결정된 존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사귐은 하나님 자신의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하나님도 자신 안에서 풍부한 사귐의 관계를 맺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의 구별과 사귐은 인간들의 사회생활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의 삶의 사귐을 결정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모든 종류의 이론적, 실천적 차별은 부당하며, 남과 여의 성적인 우위와 서열도 불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남자만이 아니라 인간을, 즉 남자와 여자를 다같이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한자로 사람은 인(人)입니다. 즉 인간은 홀로 고독하게 땅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개체(⊥)가 아니라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함께 사는 존재(人)입니다. 더욱이 한자로 사람은 인간(人間)입니다. 즉 인간은 󰡐사이에󰡑 있을 때, 더불어 있을 때, 비로소 참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人, 人, 人, 人󰡓, 즉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워야 사람󰡓입니다. 인간은 이웃을 외면하고 무시하면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웃을 존중하며 그와 더불어 살아갈 때, 비로소 참 인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웃에게도 책임적인 존재입니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됩니다. 󰡐너󰡑를 부를 때, 비로소 󰡐나󰡑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나와 너󰡑의 만남에서 󰡐영원한 너󰡑 하나님의 옷자락을 봅니다. 우리는 󰡐너󰡑에게서 󰡐영원한 너󰡑를 부릅니다. 그러므로 모든 참된 삶은 만남입니다(M. Buber).

셋째,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만물의 통치권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 인간은 만물의 통치자를 이 땅에서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 비록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탁월한 존재로 지음받았지만, 인간도 분명히 󰡐자연적인 존재󰡑입니다. 히브리어로 󰡐인간(아담)󰡑이라는 이름은 󰡐땅(아다마)󰡑으로부터 유래했습니다. 인간은 땅으로부터 지음받고, 땅 위에서 집을 짓고, 땅에서 경작한 것으로 먹고 살며, 죽어서 땅으로 되돌아갑니다. 이처럼 땅은 인간에게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제 아무리 자연보다 뛰어난 정신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자연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인간이 자신의 육신적 어머니를 어떻게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땅을 버리면, 땅도 인간을 버립니다. 땅과 인간은 공동운명체요, 다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둘, 인간의 세계지배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환경오염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파괴하도록까지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정복이 󰡐기술(技術)󰡑이라는 새로운 신화(테크노피아)를 통해 인간을 노예로 만들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배권은 인간 이외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주인이 되려는 민족과 인종과 국가는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괴물이 될 뿐입니다.

셋,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도 단순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일방적이고 착취하는 지배가 아닙니다.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에덴 동산을 가꾸며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것은 만물의 주인(하나님)을 섬기는 관리인으로서의 지배와 보존을 의미하지, 무제한적이고도 자연파괴적인 지배로 오해되어선 안 됩니다. 하늘과 마찬가지로 땅도 나눌 수 없거니와, 더욱이 하나님의 위탁물인 땅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독점할 수 없고, 탐욕으로써 파괴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을 파괴한 일에는 분명히 성서를 잘못 해석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본문을 새롭게, 아니 올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땅에 대한 인간의 지배는 하나님을 위한 청지기의 지배이며, 하나님을 위한 땅의 지배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배는 분명히 책임이 있는 관리와 보존입니다. 이 우주, 즉 하늘과 땅도 분명히 영광의 잔치에 참여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창조의 마지막, 목표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안식하고 사귀는 하나님의 나라(영광의 잔치)이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멸종시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요, 세계의 주인에 대한 범죄입니다. 이제는 인간의 권리(인권)만이 아니라 자연의 권리(자연권)도 재발견하고, 자연에게도 구원의 희망을 열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자연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마지막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나라, 그분의 영광을 물려받을 피조물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알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도 분명히 어른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지만, 그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해야 하듯이, 인간도 처음부터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맞추어) 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즉 하나님의 형상을 향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과정적 존재󰡑, 󰡐종말론적 목표를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매일 새롭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과 목표가 놓여 있습니다.


2. 교육목표로서의 화목과 4가지 영역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갖는 첫 번째 질문은 주님 안에서 갖게되는 사람의 신분입니다. 제가 처음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마음 속에 담았던 성경말씀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누구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전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더 공부를 잘 하고 더 부모님께 효도하고, 친구들과 더 좋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생활하는 시간과 열정 때문에 학교공부나 친구들, 식구들에게 이전 보다 더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더 나아진 것, 내가 새로워진 것이 무엇인가?’ 황당했습니다. 저의 열심, 저의 노력이 신앙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얼마 후에 답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당시에는 노방전도에 열심을 가졌었습니다. 주일 낮에 점심을 먹고 전도훈련을 한 후에 장충단 공원이나 남산공원, 국립의료원 등에 가서 사영리를 가지고 전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영리 그림에서 마음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위에 있는 왼쪽 그림에서 마음의 왕은 자신입니다. 그래서 세상만사가 다 엉망입니다. 그런데 오른쪽 그림을 보면 왕의 자리를 예수님께 넘겨 드리고 나는 그 밑에 겸손하게 무릎꿇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일이 중심을 잡고 순조롭게 진행되어 갑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변화는 상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순종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저에게 왕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저를 인도하신다면 그 다음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더 나은 성적, 더 나은 경제생활, 더 나은 인간관계, 더 나은 건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고린도후서 5:17에 뒤이어 나오는 18절에서 찾았습니다. 바로 화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랄프 마틴(Ralph P. Martin)은 화목이라는 개념이 신학의 세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발전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로 죄악이 횡행하는 혼란한 세상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화목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이 세상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해방되었고 창조의 질서는 혼돈으로 변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룬 화목은 모든 죄의 세력이 결국은 파멸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화목이란 이 세상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역이 창조주와 개개의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십니다. 이와 함께 연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며 그 결과 사회적 유대관계가 새로워질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셋째, 화목은 개인적이 유익을 가져옵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 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직접적으로 받는 복의 중요성을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1) 고후 5:17-6:1에 나타난 화목의 유형

화목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복음 전도와 제자도를 포함합니다. 화목은 신학적인 건전함과 일상생활의 실제적인 방향을 제공해 줍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하나님의 계획이 신자들을 화목하게 하는 역할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화목의 메시지가 적어도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5:18 이하).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목적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이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기”(5:19하) 위함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5:21)입니다.

둘째, 화목을 통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5;17).
전례없는 변화가 모든 진정한 신자들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났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5:17).

셋째, 화목의 사신들이 나타납니다(5:18 이하).
진정한 교회는 계속  변화되어 왔고 현재도 변화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6:1)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 8회 이상 '우리‘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특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고(5:18하),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5:19하)고 합니다.

넷째, 화목의 사역은 바울서신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직접적으로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이 절은 우리 마음 속에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들어 냅니다. 바울은 힘들지만 가치있는 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 평생의 사명은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5:20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문화명령’ 즉 다스리는 것과 더불어 환경의 청지기로서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 화목을 이루기 위한 중간 목표로서의 성숙

그리스도인들이 궁극적인 목적인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기독교교육이 감당해야할 중간 목표나 세부목표를 초대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2-47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임된 명령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목에 대한 적절한 세부 목표를 드러내줍니다. 이것은 교회의 4가지 책임을 초대교회가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 영적 교제입니다.
"기도"(42)와 "하나님을 찬양함"(47)은 화목케 하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성경공부와 예배를 장려하고, 신학과 영적 성숙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검증되지 않은 생각들에 도전하면서 우리의 기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게 합니다.

둘째, 공동체입니다.
“서로 교제하며...전혀 힘쓰니라”(42)와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4)는 화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본받게 하고 죄를 버리고 일관성 있는 삶을 살면서 본으로 삼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게 하며 신자들간의 갈등을 해소토록 합니다.

셋째, 인격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42)는 화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능력, 사랑, 근신(딤후 1:7)과 같은 경건한 자질을 장려하며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배양하고 나쁜 기질을 고칩니다. 경건한 삶에 방해가 되는 습관을 바꾸도록 합니다.
넷째, 사명입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5)는 화목케 하는 선언에 초점을 맞추고 십일조 생활과 복음전도, 은사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돕는 등 화목케 하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개발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내용을 생각하고 노력하여 실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교사로서 공과를 가르쳐야 하지만 교사 나름대로 꼭 가르쳐야할 내용, 즉 화목하게 하는 사람의 실제적인 모습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12가지를 선정해서 다음에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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