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성경을 8 살아내고 나누는 성경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6-10-17 15:23:21]  HIT : 196  

청소년에게 성경을 8

 

살아내고 나누는 성경

 

손종국(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기독교교육학 박사)

 

앞에서 성경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5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말씀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대로 살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그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일이 진정으로 성경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으면 술을 안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은 그렇지 않더군요.

한 번은 대학부 회장을 할 때 임원들하고 큰 행사를 마치고 음료수를 마시려고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부회장, 총무, 회계 모두가 와인을 시켜서 먹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대학을 다녔기 때문인지 일반 대학생들의 이런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늘 함께 하며 기도하고 계획하고 힘을 모아 대학부를 이끌어온 동지들인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습니다.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평택에서 카투사 기본교육도 마치고 미 2사단에 배속이 되었는데 다시 의정부 소재 직할대인 방공포 대대로 전출이 되었습니다.

첫날 밤 떨리는 마음으로 무사히 신고식을 마치고 부대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는데 한 고참이 저에게 막걸리를 권합니다. 저는 당연히 술을 못 먹는다”, “안 먹겠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모두들 황당해 합니다. 새로운 신참이 자기주장을 한다는 것이죠. 그건 관례인데. 구타로 협박을 해도 안 먹으니까 결국 타협안을 제시하더군요. 한 모금만 마시면 제대할 때까지 아무도 술을 권하지 못하게 하겠다고요.

잔을 입에 대었다가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제대할 때 까지 아무도 저에게 술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카투사라 자주 회식을 했는 모든 병사들 앞에는 예외없이 소주병을 놓고 마셔도 제 앞에는 항상 콜라가 있었습니다. 그게 관례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행동하는데는 제가 가진 예수님 믿는 사람으로서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 기준은 제가 나름대로 성경에서 발견한 명령들에 근거하였습니다. 먼저 제 몸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며 나아가 몸으로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고전 3:16-17, 12:1). 둘째로 금전적인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쾌락을 위해서 과도하게 쓰는 것이 옳지 않고 심하면 패가망신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4:7, 벧전 4:10). 세 번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덕을 위해서였습니다(20:1). 주변의 사람들은 예수님 믿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예전부터 금주는 기독교인의 인정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약시대부터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나실인 서약을 하는데 이것은 유대인에게 당연한 포도주를 마시는 일 마저도 금하는 것이었습니다(6:1-12). 저도 그렇게 드려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부터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밤을 지새는 경우가 되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자정이 넘어서 대부분의 게임이나 이야기 등이 마무리되면 모두 둘러 앉아 한 사람씩 돌아가서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찬송과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이야기 하고 그 이유와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먼저 좋아하는 찬송의 이유와 이야기를 들은 후에 함께 찬송을 부르는데 물론 자신의 18번 찬송이니까 1절은 혼자 부르고 이어서 나머지 절들은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 이어서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이야기 하는데 모두들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모두들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감동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로 함께 손을 잡고 옆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다음세대가 성경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데는 삶으로 살아내는 일과 그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알고, 말씀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말씀을 의도적으로 실천하고, 말씀대로 능력 있게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을 형성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참여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헌신 할 때에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아버지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뜻에 대한 그분의 완전한 복종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8:55).”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참여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채로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헌신과 순종을 전제하는 것이다.” 맞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할 때, 그 과정은 단지 관찰과 분석과 연구가 아닌 경청과 참여와 순종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세이무어(Jack L. Seymour)가 기독교 교육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우리가 매일의 관계들에 대해 정직하며 그것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기독교 교육의 핵심이다.”

성경적으로 사고하며 신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의 말씀으로 조옮김하며, 삶의 문제와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이 되도록 돕는 사역이 기독교교육이며, 이것이 바로 성경공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듣고, 읽고, 공부할 때 적용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적용은 배운 진리를 개인의 믿음, 인격, 삶과 연관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본문이 오늘 나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으로서, 성경 공부의 마무리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적용은 어디에 맞추어 씀입니다. 아드(ad-)’(to)라는 의미의 접두어이고 플리카레(plicare)접다’(to fold)는 의미의 동사입니다. 그래서 아플리카레는 원래 쪽으로 접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적용을 시도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1. 내가 지켜야할 명령(command)이 있는가?

2. 요구해야 할 약속(promise)이 있는가?

3. 따라야 하 본(example)이 있는가?

4. 피하거나 고백해야할 죄(sin)가 있는가?

5. 감사(thanksgiving)나 찬양(praise)을 드릴 이유가 있는가?

6. 본문은 하나님, 예수님, 나 자신, 이웃들에 대해서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그리고 적용에서 표준적인 질문과 관련한 예를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믿어야할 바는 무엇인가?

2. 내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3. 내가 회개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4. 내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5. 내가 기도하며 계획해야 할 바는 무엇인가?

 

이렇게 성경말씀을 삶에 적용을 하였다면 나아가 함께 나누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첫째, 참여자들의 경험을 나눔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참여자들이 함께 신앙 공동체에서 생활을 하지만 깊은 이야기와 생각을 나눌 기회가 별로 없는 한국 상황에서 나눔의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둘째는 응답과 결단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합니다. 대부분의 성경공부는 도식적인 결단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여야만 한다고 결론이 내려지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눔은 참여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갖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을 실천한 사례를 남에게 이야기함으로 더욱 확실한 자신의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잘 정리된 나눔 또는 가르침은 알고 있는 성경지식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나눔은 성경을 내것으로 하는 일의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부탁하셨습니다.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28:19). 우리가 무엇을 취한다는 것은 결국 남에게 주기 위한 것입니다. 물질도 내가 쓸 것을 빼고는 남에게 주어야 하는 것처럼 지식습득도 내 성숙을 위한 유익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남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로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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