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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6-05-19 15:33:23]  HIT : 221  

기독교교육산책 6

 

 

변화를 일으키는 교사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사람은 변화를 한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성장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의 방향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정체라고 이야기하며 사람에게 권태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이것은 퇴보 또는 퇴행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은 좌절을 느낀다. 그런데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진 상황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발전 또는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성장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학교의 교사들은 어떠한가?

 

1. 교사의 단계

 

교사에는 다음의 4단계가 있다고 한다.

먼저 그저 그런 교사이다. 그는 학생에게 공과를 가르치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 다른 역할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 공과에서도 자신이 이해한 것을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전달하고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마치 우편배달부가 자신이 전하는 우편물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우편물의 내용을 보고 수취인이 울던지 웃던지 관심이 없다. 심지어 죽게되어도 그의 책임은 아니다.

두 번째는 설득하여 이해를 시키는 교사이다. 그는 자신이 이해한 바를 잘 정리하여 학생에게 전달하는데 그 학생의 머리에 호소한다. 실지로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은 큰 기쁨이다. 따라서 학생은 가르치는 교사를 좋아하며 배우는 일을 즐거워한다.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을 만나는 교사는 행복하다. 이따금 여러 교회를 돌면서 교사교육을 할 때면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 주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 때의 그 묘한 감동을 잊지 못해 나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감동을 주는 교사이다. 지적인 이해와 함께 마음에 충격을 주는 교육이다. 이러한 감동은 지식을 더욱 풍요롭게 하며 실천의 동기를 충동시킨다. 때로는 웃음으로, 그리고 때로는 숙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감동을 전하는 교사들을 볼 때면 정말 귀한 자리임을 절감한다. 설교자는 청중을 두 번 웃기고 두 번 울리면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교사들의 교육현장에서도 이러한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어야 할 것이다.

네 번째는 영감을 주는 교육이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전을 주는 것이다. 마치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베드로 복음을 전했을 때 3,000명이 되는 유대인들이 옷을 찢으며 그러면 어찌할꼬?’하는 일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2. 누가처럼 감동을

 

그런데 우리에게 이와 같이 사람에게 영적 감동을 주는 교사가 있는가?

성경에서 누가는 데오빌로라는 대상을 향하여 거룩한 소원을 가졌었다. 그가 변화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원을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누가는 누구인가? 그는 안디옥 사람을 의사였으며, 84세 때 성령에 충만하여 보에오티아에서 잠들었다. 그는 헬라 경건주의적 성격으로 관용이 많은 사람이며, 헬라문학에 소양이 있고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이런 누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방법과 의도를 가지고 편지를 썼다.

 

첫째로, 모든 일의 근원을 살폈다.

1) 그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는 주님의 사역을 지켜본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해준 것들을 잘 듣고 간직하였다. 실제로 교사는 자기가 전하려는 모든 것에 대해서 용의 주도하게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이 이해하고 확신한 것을 전할 때에 학생에게서 감동과 결단을 기대할 수 있다.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고 문맥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연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시를 쓰는 노력이 병행이 되면 좋겠다. 시어(詩語)란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유일한 단어라고 하기 때문이다.

2) 사도 바울의 조수로서 많은 경험을 하였다. 그는 바울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드로아에서 2차 전도여행을 하는 바울을 따랐고(16:10), 3차 여행의 귀로에도 동행하였다(20:6). 그리고 죄수가 되어 로마로 호송될 때에 함께 하였고(27:1-28:16) 옥중에도 함께 있었다(24, 딤후 4:11). 그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그 상황이 가져다주는 교훈과 감동을 그대로 몸으로 체득하였다. 그러기에 누가복음 뿐 아니라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어떻게 일하시고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현장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먼저 교회와 사회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 어려움과 정확한 실천방법, 그리고 그 복된 결과를 몸으로 알아야 한다.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삶은 학생을 자유하는 삶으로 가르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요사이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부분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3) 바울의 동역자로서 초대교회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신앙고백을 경험하였다. 스데반의 최후의 기도(7:1-53), 더러운 음식에 대한 베드로의 거절(10:9-16), 결례를 행하는 바울의 결단(21:17-26), 천부장과 베스도, 아그립바 앞에서 행한 바울의 간증(22, 25, 26) 등은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는 많은 신앙의 용장들을 만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신앙모습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겨진 진지하고 웅대한 신앙의 고백들을 배웠을 것이다.

신앙은 교제를 통해서 더 풍성해 진다. 나보다 먼저 믿는 자된 이들의 믿음의 간증과 고백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야할 것들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깨닫게 한다. 우리도 성경연구와 개인적인 실천뿐만 아니라 그 성경을 나와는 달리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각 사람에게 은사가 다르듯이 각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의 색깔을 다르다.

 

둘째로, 차례대로 써 보냈다.

누가는 의사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더욱 학문적인 접근을 했다. 이전에 어떤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실험시간에 교수님이 오줌을 비커에 담고 학생들에게 자기처럼 맛을 보라고 하셨다. 먼저 손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에 손가락 하나에 혀를 대고 맛을 보았다. 학생들이 모두 다 마지못해서 따라하면서 정말 그 맛을 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고소하다는 듯이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셨다. 교수님은 검지로 젓다가 장지에 혀를 대고 맛을 보는 시늉만을 했던 것이다. 의사로서 훈련받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자세하게 관찰하는 일도 배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초대교회의 다양한 모습과 사실적인 감동을 전달해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는 차례대로 자기가 알고 획득한 자료들을 연대기적으로 잘 정리하였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특별히 편지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기독교유산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물론 공과교수와 설교라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준비된 원고가 있어야 한다. 효과적인 학습안을 만들기 위해서 땀과 진을 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원리에 따른 관계형성, 환경정리, 도구사용, 효율적인 대화와 전달기술 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때를 따라 상담과 치유, 교정과 훈련작업을 해야 한다. 가치관을 심고 행동을 하게 하며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모든 문화적인 활동을 통하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전화와 편지로, 그리고 선물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 가르쳐야 한다. 혼자서 가르치기도 하고 팀을 이루어 가르치기도 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목적이 분명하였다.

그가 편지를 쓴 이유는 데오빌로 각하로 하여금 배운 바를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누가는 저작목적을 밝힌 유일한 저자였다. 물론 요한은 편지를 받는 이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저작목적을 거론하고 있지만(20:31) 누가는 한 개인을 지칭하여 저작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 목적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설정은 필수적이다. 새로운 지식을 깨닫게 하고 새로운 감동을 얻게 하며 새로운 결단을 하도록 하는 목표설정이 있어야 기대를 하고 인내하며 교육행위를 할 수 있다. 사람이 노력하는 자기성장의 결국은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모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다가 회복기에 접어든 한 청년이 1919년 시카고에 있는 작은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그가 그 집을 고른 것은 근처에 유명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널리 격찬을 받은 소설 윈저버그, 오하이오를 집필했으며 젊은 작가들을 잘 돕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으며 2년 동안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멀리 산보도 나갔으며 기교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젊은이는 자기의 습작들을 종종 앤더슨에게 가져갔으며 그 노련한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비평을 가했다. 그러나 그 젊은 작가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매번 그는 경청하면서 조심스럽게 노트에 메모해 갔으며 그런 다음 원고를 향상시키기 위해 타자기와 함께 살다시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셔우드 앤더슨을 만날 때까지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조차 몰랐다.“

이 청년은 헤밍웨이였다. 그 후에 앤더슨은 뉴올리온즈로 이사가서 거기서 또 한 청년을 도왔다. 그는 윌리엄 포크너였다.

열망을 품고 있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멘토로서 도움을 준 앤더슨의 역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는 수년 동안 여러 작가들 중에서도 극작가 토마스 울프와 존 스타인백이라는 젊은이와 함께 작품활동을 했다. 앤더슨의 문하생 중 세 명이 노벨 문학상을, 네 명이 퓰리처 문학상을 탔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말콤 카울리는 앤더슨을 평하기를 다음 세대의 문체와 비전에 자신의 자취를 남긴 그 세대의 유일한 작가라고 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하워드 핸드릭스, 117-9)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성경공부를 혼자서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신 강도사님과 본문의 재창조를 알게 해준 성경학자. 학문의 길을 소원하게 하셨던 목사님과 전도사님, 예수님을 소개해준 친구와 목사님, 철학 하는 재미와 깊이를 알게 하셨던 교수님,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갈증을 갖게 도전하셨던 교수님, 전문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도전하였던 기업체의 사장님들과 여류인사, 세상을 관조할 수도 있음을 알게 해준 여러 시인과 수필가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진지한 노력을 가르쳐준 형제와 자매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금 나의 나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구로 나를 위해 사용되어진 그들을 생각하며 가슴 벅찬 감동을 갖는다.

 

3. 지속적인 변화를 위하여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어쩌다 만나서 인사를 할 때면 자주 누구시지요?’ 하고 묻는 것으로 보아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최근에도 어느 교회에서 강의를 요청하면서 제가 몇 년 전에 지도자학교를 수강한 아무개 전도사입니다하는 인사를 받았는데 도무지 얼굴이 생각이 나지를 않았었다. 그리고는 다시 질문해 본다. ‘나는 진정한 교사인가?’ 물론 사람에게는 일만 스승이 있어서 그때그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나 역시 많은 선생님들 덕에 이만큼 성장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욕심을 부려본다. 나는 지속적인 영향을 남기는 교사이고 싶다고.

 

만일 우리가 지속적인 영향을 남기는 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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