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통독 2강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시작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6-04-19 11:35:41]  HIT : 825  

2강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시작
<예수 탄생~공생애 첫 유월절 지난 8개월까지>


구약 말라기가 어떤 이야기로 끝났나요? ‘엘리야를 보내리라~’(말4:5-6)는 약속을 하고 매듭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시작도 그 이야기여야 하지 않겠어요? 맞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정말 왔을까요? 네~ 왔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마 17:10-13,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닌지 2년 6개월쯤 되어서야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사역)는 세례요한의 집회 장소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늘상 앞에 나오는 이야기가 뭐였습니까? 예수님이 세례받으시는 장면, 시험받으시는 이야기…… 뭐 이런 이야기였던 것 기억나시죠?
맞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세례받으시고 시험받으신 후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는 ‘30세쯤 됐을 때’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건드리고 있다는 것 아시죠?
그러니까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30세 이전에 관한 정보도 복음서에는 있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 신약의 예수 스토리를 공부하기 위해 일단 두 부분으로 크게 나눕시다. 유년시절과 공생애입니다. 유년시절은 간단해서 정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생애입니다. 공인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30세쯤부터 시작해서 3년간의 공생애가 관건이에요. 그렇지만 아이디어가 있답니다. 시간 즉 유월절과 장수, 즉 유대와 갈릴리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처음 듣는 얘기죠? 걱정 마십시오. 이제 하나씩 하나씩 강의를 따라 정리해 봅시다!


1. 정치적 상황과 헤롯왕가

로마의 태동

로마와 카르타고

로마의 제국화

승승장구하던 로마도 내부 홍역을 앓았다.

폼페이의 예루살렘 점령
시대는 인물을 낳는다고 이때 영웅이 나타났다
첫 번째 인물이 폼페이였다 BC 64년 폼페이는 해적 소탕 작전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길리기아 지경으로 들어가 수리아를 정복하였다
그가 다메섹에 왔을 때 하스모니아 왕국은 힐카누스파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파가 내전을 치르다가 왕국 전체를 로마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폼페이는 예루살렘에 들어와 하스모니아 왕조를 폐하고 총독 정치를 하도록 편재하였다
거기다 유다의 힘을 분열시킬 요량으로 유다 사람이 살던 중간 중간에 이방화한 헬라 도시를 심어 두었다. 열 개의 헬라화한 도시 ‘데가볼리’는 그가 만든 작품이다. 사마리아도 유대에서 분리했다. 골란 고원은 아랍 민족인 이두래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유다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었다

가이사와 유대
두 번째 인물이 성경에는 가이사라 불리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였다 그는 BC 71년에 일어난 노예 반란인 스파르타쿠스를 제압하고 갈리아에서 명성을 떨쳤다 세 번째 인물이 크릿수스로 대단한 부를 가지고 삼두정치를 이루었다
크릿수스는 미정복지인 수리아 동쪽 바대(파르티아) 왕국을 치고자 출정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노략하지만 바대에게 전멸 당한다
삼두체제는 무너지고 가이사와 폼페이의 권력 투쟁이 시작 되었다 원로원은 가이사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견제했다. 갈리아 원정길에서 로마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가이사가 급습을 하여 정권을 잡는다.
BC 48년에는 그의 경쟁자 폼페이가 이집트로 달아났으나 프톨레미 13세에 의해 죽었다
폼페이를 추격해온 가이사는 오빠 프톨레미의 권세를 탐내던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졌다. 이 과정에 가이사는 프톨레미 군대에 포위당했다. 이때 유대를 다스리던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테르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를 구출했다. 이 일로 가이사는 유대인에게 특권을 주었다
BC 46년 가이사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공화정의 지속을 원하는 세력이 BC 44년 가이사를 암살하였다. 가이사가 아꼈던 브루투스가 암살자 중 한 명이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가이사 아구스도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눅 2:1)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눅 2:2)

디베료 황제

• 바벨론 포로 이후 디아스포라 된 유대인이 가는 곳마다 회당을 건축하고 말씀을 가르쳤다.
• 헬라가 문화를 퍼뜨려 언어가 통일되어 있었다.
• 구약이 히브리어에서 헬라 어로 번역되었다.
• 로마가 길을 열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 로마의 법체계는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호해주었다.
• 팍스 로마나는 복음이 확장되는 배경이 되었다.

헤롯의 등장
로마는 물러가면서 이두매 사람 안티파테르에게 행정권을 넘겨 행정장관, 즉 지역 총독 역할을 맡겼다 안티파테르는 로마의 비위를 잘 맞추면서 역할을 감당했다. 특히 이집트에 포위된 가이사를 구출함으로 더 좋은 인상을 주었다
안티파테르는 첫째 아들 파사엘에게 예루살렘을,둘째 헤롯에게 갈릴리를 통치하게 하였다 예루살렘은 평온했으나 갈릴리는 시끄러웠다 헤롯은 히스기야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입하였다. BC 43년 안티파테르가 독살되자 파사엘과 헤롯이 분봉왕으로 임명되었다
헤롯의 위기는 BC 31년 악티움 해전 이후였다.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였다 문제는 헤롯이 안토니우스 군대에 소속되었기 때문이다. 안토니우스가 동방을 다스렸으므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로마의 내전에 도리 없이 옥타비아누스의 적이 되어 로도 섬으로 소환되었다. 이때 헤롯은 정면 돌파하며 안토니우스를 따른 것은 로마를 섬긴 것이고 이제부터 로마의 주인인 옥타비아누스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기백에 감동한 옥타비아누스가 헤롯을 적극 밀어주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이름을 얻고 헤롯에게 BC 23년에 북쪽 이두래,바타네아, 아우라니티스를,BC 20 년에는 가울라니티스와 파니아스, 울랏사까지 주었다.
헤롯이 힘썼던 분야는 건축이다.
그의 약점은 의심병이었다.
외부 단속을 잘한 헤롯이지만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암살되었기 때문인지 신변 문제에 민감했던 그는 가족까지 의심하여 가장 사랑한 아내 미리암을 비롯하여 자식을 수 없이 죽였다
죽기 며칠 전에는 왕세자로 아끼던 장남 안티파테르 2세도 죽였다 이런 헤롯에게 동방박사가 찾아온 것은 충격이었다. 자기 대신 왕이 될까봐 아들까지도 죽이던 헤롯이 다른 왕이 태어났다니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잔인무도한 일까지 감행하였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행과 그 모든 지경 인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2. 신약 읽기의 난제 해결

1) 첫째로- 4복음서의 내용을 하나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
요 2: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
요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 유월절③ 갈릴리 사역 - 초막절 직전 가이사랴 빌립보 MT(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첫 번째 수난 예고-가이사랴 빌립보) 마16:13-28 막 8:27-9:1 눅 9:18-27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둘째로-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연결시키는 문제입니다


3. 복음서 입문

복음서를 이해하려면 예수님의 마음과 제자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마태-왕  27: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마가-종  10:3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가-인자(사람)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요한-하나님의 아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복음서의 자료들은 대략 어록(sayings)과 설화(narratives),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구분하며 마가의 거의 모두가 마태에 들어있고, 많은 마가가 누가에 들어 있다. 또, 마태와 누가는 많은 양의 중복된 내용이 있는데, 이들은 마가에 없다. 요한복음은 90%가 독자적인 내용이다.

공관 共觀 복음과 요한복음


어떻게 기록되었는가?

예수님이나 그의 가까운 제자들은 "성서"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성서가 나타나기 이전의 문서 기록이 없던 시기를 "암흑시대"라고 하거나 "구전시대"라고 부른다. 문서가 기록되기 시작한 몇가지 이유는
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최초의 제자들도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2) 로마에 의한 교회의 박해가 문서의 필요성을 재촉했기에-안전,
3) 초대기독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도 그들이 회당의 예배 형식에 따라 봉독하던 구약성서 이외에 독자적인 기독교 문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족보(마태 1:1-17, 누가 3:23-38)

1. 마태와 누가가 제시한 족보의 차이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족보를 기록한 ‘목적’이 다르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의 자손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으로 족보를 사용했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하늘로부터 예수님을 향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있은 후에 곧바로 족보를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아담의 아들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 족보를 기록한 ‘방식’이 다르다.
고대의 인물에서 최근 인물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기록된 마태복음의 족보는 구약의 족보 관례와 일치한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족보는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것은 그리스-로마 족보의 기록 방식과 동일하다. 이러한 기록 방식의 차이는 아무래도 마태복음은 유대인 독자를, 누가복음은 이방인 독자를 대상으로 씌어진 책이라는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14라는 숫자에 꿰어 맞춘 마태복음의 족보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마 1:17).
달렛(ד, 4) + 바브(ו , 6) + 달렛(ד, 4) = 14
이처럼 14라는 숫자는 곧 다윗을 의미하는 강력한 상징이 되는데, 이러한 상징은 마태복음의 독자인 유대인들에게 보편 적으로 통용되는 것이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족보를 통해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으며, 아울러 유대인들에게 통용되던 ‘다윗=14’라는 공식을 세번 반복함으로써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나신 분(메시아)임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4. 유년시절

헤롯 통치 말기

세례요한 잉태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 (눅 1:65-66)

예수님 잉태

1. 베들레헴-탄생(제목 앞에 번호는 신약 파노라마 순서 숫자이다.)

양 우리

목자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최초의 성전 방문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여인이 잉태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곧 경도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 것이요 그 여인은 오히려 삼십 삼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레 12:2-4)

베들레헴
동방박사들이 찾아간 곳은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밖에 안 되는 베들레헴이었다 베들레헴은 작지만 성경의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룻과 보아스의 사랑이야기,다윗의 유년 시절과 선택, 블레셋과의 전투가 펼쳐진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셨다 예수님이 이곳에 태어난 것은 또한 세펠라께서 활동하던 선지자 미가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동방박사

라마의 통곡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함이 이루어졌느니라(마 2:18}


2. 애굽으로 피신


3. 나사렛-목수


4. 예루살렘-12살(눅 2:41-52)

요셉 집안은 해마다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에 갔다. 요셉 집안뿐 아니라 모든 갈릴리 유대인이 행하던 습관이다. 움직이는 경로는 지도 1-2에서 보듯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간 그 길이다 이때는 대개 친척 단위로 움직이니까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서로 안심할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도 유월절 제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 성인식을 할 나이(13살)가 된 12살 예수가 당연히 친척 틈에 끼어 따라오리라 믿었다.
요셉과 마리아 일행이 갈릴리로 가려면 먼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내려가야 한다. 가는 길이 적어도 9시간 거리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여리고에 이르러 잠을 자려고 할 때 소년 예수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친척 틈에 끼어 오리라 생각했다 할 수 없이 하룻밤을 여리고에서 자야 했다 그렇지 않고 개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움직인다면 위험천만 한 일이다
요셉 일행은 다음날 하루 종일(9시간 정도) 예루살렘에 올 라가서 일단 자고 다음날에야 아들을 성전에서 발견하였다. 예수님을 찾는 시간 꼬박 3일은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 거리를 보면 기본으로 소요된다.

사홀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눅 2:46)

헤롯의 통치 구역
헤롯이 로마로부터 분봉왕으로 임명받은 지경은 솔로몬 때 영화와 맞먹는다. 다만 그 권한이 독립된 지방자치 장관 정도로 온전한 왕이라 할 수 없다 군사권이 없고 세금도 로마에 바쳐야 했다
해롯이 죽고 통치 구역에 관한 잡음이 많았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헤롯은 똑똑한 아들올 모두 죽였다 살아남은 아들 간에도 문제가 많아 원로원은 헤롯이 다스리던 구역을 분할하였다. 일부는 여동생 살로메에게,대부분은 아들들에게 주었다.
유대와 이두매,사마리아는 아켈라오가 위임받았다 갈릴리와 베레아는 헤롯 안티파스(=안디바)가 다스렸다. 갈릴리 북쪽 이두래와 드라고닛은 빌립이 담당하였다.
아켈라오가 실각하고부터는 로마가 직접 보낸 지방장관이 사마리아-유대-이두래를 다스렸다. 성경은 총독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권이 없고 행정권만 가진 지방장관이었다
이 총독은 행정수도를 해안가 가이사랴에 두었다. 그리고 군사권이 없는 대신 자체 병사를 모집하며 예루살렘 등지 요소에 배치하였다

5. 초기 사역

세례요한 (마3:1-12; 막 1:1-18; 눅3:1-20; 요 1:19-28)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이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사 40:3)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요 1:28)

예루살렘에 가까운 베다니가 유명하지만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넘어가기 전에 베다니가 있었다. 베다니는 벧+아니= 가난한 자의 집,즉 빈민촌이다.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에서도 접근하기 쉽고 특히 갈릴리 사람들이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가려면 반드시 거치는 장소다 이곳에서 세례요한이 세례를 준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죄인 취급받는 이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주었다.
2) 세례요한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3) 안드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요한이 집중적으로 사역 한 대상은 갈릴리사람이었다.
4) 마지막으로 놓칠 수 없는 것은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역지이다.


5. 요단 강-세례

이곳이 바로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입성한 자리이다 세례요한은 이제 새로운 가나안을 열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는 일꾼으로서 열심이었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성결 작업을 먼저 한 것처럼 세례요한도 천국이 열리기 전 사람들의 성결 작업을 위하여 회개를 촉구하며 세례를 주었다 요한복음에 세례요한이 사역한 구체적인 장소를 열거하는데 주로 요단 강 건너편 (모압) 평지였다.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 3:22)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니 거기 물들이 많음이라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 3:23)


6. 광야-시험

예수님이 시험받는 장면을 그려보라.
마귀가 가장 먼저 접근한 시험이 돌이 빵(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시험은 마태와 누가의 순서가 다르다 차례대로 기록하였다는 누가에 따르면 마귀가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였다 그 모든 곳을 보일 수 없었다면 아마 광야와 극명히 구분되면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되고 풍요로운 여리고를 보여드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지극이 높은 산은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 가셨을 때와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 그 의미와 관련하여 생각해보라
세 번째는 예루살렘 성전에 데리고 가서 그 곳에서 가장 가파른 성전 남쪽 모서리에 세우고 시험을 하였다 사람이 가장 많은 장소에서 한번 능력을 자랑해보라는 것이다.

갈릴리 사역 행
세례와 금식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한 동안 세례요한이 활동하던 유대 근처에 머무시다가 그가 헤롯 안티파스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로 가셨다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2-13)
세례요한은 갈릴리와 요단동편을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가 골란 고원 방면을 다스리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보고 꾸짖다가 잡혔다. 전통에 따르면 요단동편 막켈루스 요새에 갇혔다 헤롯 안티파스는 잔칫날 헤로디아의 꾐에 빠져 세례요한을 죽인다 이 장면은 마태복음 14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141-12을 읽어라


7. 가나-혼인잔치

8. 예루살렘-성전 청결(요 2:13-25)
제사드릴 때 제사장과 상인은 결탁하며 자기 집에서 가져온 물건을 잘 받지 않고 불합격 처리시키곤 한 것 같다. 사람들은 비싸더라도 안전한 제물을 사기 위하여 성전 근처 상점에서 제물을 구입하였다 이왕이면 조금 더 성전에 가까운데서 물건을 구입하려 했다 그 욕구를 안 상인 가나안인은 제사장에게 돈을 주고 성전 마당까지 상권을 확장시켰다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묵인한 일반인과 다르게 예수님은 분노하셨다 자신 있게 행동하시는 예수님께 유대인이 표적을 요구하였다. 예수님은 성전의 핵심이 말씀이고 말씀이 자신임을 드러내시고 성전, 즉 예수님을 헐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보이는 성전만을 생각하고 그 성전을 46년 동안이나 짓고 있다고 하였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의 성전 건축은 주전 20년에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이 말을 한 때가 주후 27년경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첫 번째로 방문한 유월절이 주후 Z7년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인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요 2:20)


8. 예루살렘-거듭남(요 3:1-21)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견제하였지만 일부는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배우려 하였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대표 기관인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지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다. 그의 질문이 없었다면 성경 전체의 요절이 나오지 못할 뻔하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9.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요 2:1-42)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δει) (요 4:3-4)
사마리아로 향하던 길은 족장의 도로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유대인들은 적대 관계인 사마리아 인이 거주 하는 에브라임 산지를 지나는 족장의 도로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지나가셨다. 아니 지나가셔야 했다

• 사마리아는 지명이다.
사마리아는 도시명이었다. 그러나 BC 722년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행정 체계를 재편하면서 에브라임 산지를 이전 수도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칭하였다. 그러므로 앞으로 사마리아 지경과 도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벧엘에서 세겜(수가)까지 가셨다 그 길에서 무수한 사건이 일어났다
►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조카 롯에게 결단을 요구한 아브라함
►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다 하늘의 사닥다리를 본 일
►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군사를 모아 이스르엘 골짜기로 향하던 일
► 실로의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기고 실로 성전이 파괴된 일
► 사무엘이 벧엘과 라마 사이 미스바에서 회개의 성회 개최
►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전투하던 장면
► 유대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일
많은 사건이 그 길을 따라 벌어졌고 이 모든 사건 위에 예수님은 무엇인가를 알리시러 수가 성(세겜)으로 가신다.

• 수가성은 어디인가?

• 사마리아인의 유래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이 앗수르로 이주되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하여 사마리아로 이동해온 민족이 남아있던 이스라엘 사람과 혼혈로 사마리아인이 탄생하였다 반은 이방인이고 반은 이스라엘사람 이 종교도 이방 종교와 여호와를 겸하여 섬겼다. 이런 형태의 삶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 인과 마찰을 일으켰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은 에스라와 느헤미이에 잘 나타난다

• 왜 세겜에서 메시아를 선포하셨나?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유대인이 그토록 혐오하는 사마리아 중심부 세겜에서 말씀하셨을까? 예수님
세겜의 역사를 말하자면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성경의 역사만 요약해도 다음과 같다.
► 창 12:6-7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첫번째 제단을 쌓고 예배
► 창 33:18-35:5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첫 번째 제단을 쌓고 예배
► 수 8:30-35 세겜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서 여호수아가 율법을 기록하고 축복과 저주 를 선포
► 수 24:1-28 여호수아가 마지막 연설
► 삿 9:1-57 아비멜렉의 반란과 기브온의 막내 요담이 그리심 산에서 연설

• 예수님이 세겜에 오신 목적은 예배의 성취였다.
세겜의 성경적인 전통은 매우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올 때 첫 예배를 세검에서 드렸다 그리고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올 때도 처음 예배드린 곳이다. 심지어 야곱은 얼마 동안 세겜에 머물며 우물을 사서 살았고 요셉은 죽으면서도 이곳을 못 잊었던지 유언대로 세겜에 뼈를 묻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가장 먼저 찾으려고 했던 곳도 세겜이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세겜의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가서 율법을 새롭게 하는 예배를 드릴 것을 요구했으며 여호수아는 그것을 그대로 행하였다{신 11:29,27:12).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올 때도 첫 번째 예배 처소가 된 곳이었다. 한 때 실로나 예루살렘에 예배처의 영광을 내주었어도 가나안에서 예배의 처음이요 뿌리가 되는 장소는 세겜이었다
여호와를 향한 예배의 기원이 되었던 세겜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 바른 예배를 가르치시려는 예수님은 당시 위험한 사마리아를 통과해야만 했다. 예수님은 예배를 오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사마리아 여인을 택하셨다. 그리고 예배의 기원이 되는 명께서 예배의 근본을 가르치셨다. 그 말씀은 의미 없이 전통과 형식에 젖어 예배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의 귀에도 메아리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성령(신령)과 진리 (진정)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마무리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역사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구약 족보의 마침이며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세례를 시작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예수님 때문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혼란에 빠지고 예수님은 유명한 스타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함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역을 따라가 봅시다.
자, 다음 주를 기대해 봅시다!

성경읽기
아래 표를 참고하여 성경을 읽어온다.
(☞ 한사건에 여러 본문이 있을 경우 맨 앞에 있는 본문만 읽어도 무방함, ex) 볼드표시 참고)

1) 탄생에 관한 기록

눅 1:1-38
누가의 예수 탐구 이야기 시작
마리아와 천사
마 1:18-25
요셉에게도 천사가 나타남
눅 1:39-2:7
몇 달 동안 마리아가 사가랴(세례요한의 부모)의 집에 머무름, 예수 탄생
마 1:1-17; 눅 3:23b-38
예수의 족보
눅 2:8-38
예수 탄생 때의 사건들(목자, 할례, 시므온과 안나)
마 2:1-23
동방박사, 애굽으로 피난, 아기 학살사건, 나사렛 귀향

2) 소년시절에 관한 기록

눅 2:39-40
예수의 유년시절
눅 2:41-52
예수의 소년시절, 성전에서 있었던 일, 귀향 후 가사를 돌봄

3) 공생애 자투리 - 유월절(1) 이전

눅 3:1-17; 3:21-23a
마 3:1-17;
요 1:1-34; 막 1:1-13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 공생애 시작(세례 & 시험)
요 1:35-2:12
다섯 제자를 만남, 가나혼인잔치, 가버나움에 내려가심

4) 유월절(1) - 예루살렘 사역

요 2:13-4:2
첫 유월절 이후 약 8개월간 예루살렘에 거주, 예루살렘에서 명성을 갖기 시작하심
눅 3:19-20; 요4:3 마4:12; 막 1:14-15
세례요한의 투옥 이후 갈릴리 사역 시작됨
요 4:4-45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중 사마리아 여인 만나심
요 4:46-54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as23d(2018-11-04 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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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xc(2018-11-11 04: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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