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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국  Homepage Email [2016-01-17 02:14:06]  HIT : 335  

 

개인의 삶에 맞추는 교육

손종국

 

 

그래서 학자들은 교육개념을 간단하고 쉽게 드러내기 위하여 은유를 사용한다. 쉐프러(Isral Scheffler)는 교육에 관한 은유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로, 주형은유(the shaping or molding metaphor)이다.주형은유는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습자의 관곌분명하게 구분한다. 교육과정에서 교사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학습자는 그 무엇으로 만들어져 가는 재료와 같은 존재임을 암시한다. 학습자는 수동적인 존재에 불과한 반면에 교사는 이미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학습자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지도하고 이끌어 가는 존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학습자를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형은유에서의 교육대상은 마치 진흙과 같은 수동적 또는 피동적 존재이고 교사는 자기가 정해놓은 목표대로 학습자를 인각해 가는 능동적인 존재인 것이다. 학습자의 최종적인 모습은 교사의 선택에 달려있다. 학습자는 독자적으로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없다는 면에서 주형은유는 각 개체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성장은유와는 대조적이다. 학습자 자체는 최종적인 결과나 진행상의 어떤 과정을 수용하고나 거부하지 못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주형을 하는 교사에게 달려있다.

이러한 교육관의 철학적 배경은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아동관이다.

, 로크는 학습자를 백지나 혹은 밀랍과 같아서 가르치는 사람이 희망하는 대로 조형하거나 만들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로크의 주장은 백지설이라 불리우는 것으로 그의 교육론의 출발점이다. 주형은유는 교육내용을 중시한다. 곧 교육은 교사가 학습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서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주형은유는 비록 아동의 생물학적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적합하지 않지만 사회의 환경에 종속적 관계를 갖는 문화적, 개인적, 도덕적 발달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성장은유보다 더 적합해 보인다.

주형은유는 그 자체에 단점을 가지고 있다. 흙과 사라의 본질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간과하고,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비교함으로써 문제점이 생긴다. 흙은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대로 빚을 수 있다. 곧 흙 자체는 어떤 형태를 선호한다거나 빚는 사람의 뜻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 곧 학습자는 교사가 의도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저항하기도 한다. 흙은 가소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형체는 빚는 사람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러나 사람은 흙과는 달리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 가소성을 지닌다고만 말할 수 없다.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습자 모두가 합리적인 존재들에 속한다. 주형비유는 이러한 교사와 아동의 모습을 가소성을 지닌 존재들로서만 너무 편협하게 그리고 있으며 교육현실 속에서 교사의 위치가 지나치게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 학습자의 자발성을 무시하고 교사의 의도대로 주형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교육과정상의 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다.

 

둘째로, 성장은유(the growth metaphor)이다.

성장의 은유가 제기된 배경은 무엇인가? 성장은유에서는 교육적 권위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함의되어 있다는 블랙(Max Black)의 말 속에는 성장은유가 나타나게 된 원인과 그 철학적 배경이 암시되어 있다. 이는 근대 자연주의 철학이 발견한 어린이의 개념이 성장은유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음을 뜻한다. 어린이라는 개념의 발견은 중세의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 교육으로부터 아동의 자발성, 내적인 성숙을 중시하는 아동중심적인 교육 곧 근대교육으로 선회하게 하였다. 그 결과로 교육의 은유에 있어서 전통적인 주형개념에서 성장개념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성장은유의 타당성 문제인데 즉, 교육을 성장으로 은유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제기이다. 성장은유의 철학적 배경은 자연주의인데 그 핵심적인 인물은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이다.

루소는 사람들은 식물을 재배로써 가꾸고, 인간을 교육으로 만들어낸다.고 함으로써 교육을 성장으로 은유하고 있다. 식물을 재배하는 것과 이이들을 교육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연관성이 있으며 정원사의 역할과 교사의 역할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다. 자연주의가 가조하는 교육은 인간발달의 자연적 법칙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학습자의 준비성과 성숙성을 강조한다. 이는 학습자를 교육활동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학습자는 선생이 계획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동자체에 내적인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 것으로 교육의 내면적 모습을 주형은유보다 좀 더 정확하게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인 요소는 아동관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곧 루소시대 이전까지는 어린이를 단순히 성인의 축소형으로 간주하였다. 그 한가지의 예로서 12세기까지의 미술작품들에 나타나는 어린이는 어른들과 비교하여 신체적인 특성 곧 근육조직 등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다만 크기만 어른보다 작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루소시대에는 1718세기의 계몽주의 철학의 영향으로서 어린이에 대한 관점이 많이 변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어린이란 자연적으로 자라간다고 말한다. 자연적 성장이란 식물이 그 자체에 지닌 내적인 힘에 의해서 씨앗의 발아에서부터 열매가 익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라가는 성향을 의미한다. 그리고 식물의 이러한 자연적 성장을 교육에 은유함으로써 어린이 역시 자연적으로 혹은 내면적으로 자라갈 수 있는 힘 곧 내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연주의 아동관이다.

이러한 아동관의 변화는 교육이란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not educare) 학습자의 내부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의 어원적인 근원은 라틴어 ‘educere'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교육을 성장으로 은유할 때는 교육이란 학습자 내부의 잠재적 능력이 밖으로 발산될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장애물을 제거해주는 것으로 정의한다. ‘성장은유는 이렇게 아동의 잠재적 능력심리적 발달단계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교육이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공헌하였다. 이러한 잠재적 능력에 대한근거로서 하퍼(Norman E. Harper)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의 특성으로 측량할 수 없는 가능성’(immeasurable potential)을 언급한다. 그리고 심리적 발달단계에 대해서도 성경은 긍정적이다. 이에 대해서도 하퍼는 성경에 근거하여 교훈의 방법들은 아이들의 본성과 신학적 지위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고 함으로써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형이라고 말한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교육에 대한 은유로서 세 번째는 예술 은유(the art metaphor)이다.

이 은유는 주형은유에서는 학습자를 수동적인 모습으로, 교사를 지나치게 주도적인 모습으로 부각하는 데 반하여, ‘성장은유에서는 학습자의 자발성을 강조한 결과 교사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소평가 되었다는 점에 근거를 둔다. 아울러 주형과 성장은유 모두에서 교사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 교사와 학습자의 관계는 주형은유나 성장은유 모두에서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교사와 학습자의 관계는 예술가와 재료 사이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술가는 재료의 성질을 무시한 채 자기 마음대로 재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다룰 때 그 성질을 고려한다.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재료와 겨루고있는 것이다. 돌과 나무를 다룰 때는 그것들이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들을 고려해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면 교육 역시도 예술로 은유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일반교육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은유들인데 이들은 나름대로 교육의 특정한 측면을 각기 강조해 줌으로 교육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2) 기독교교육의 개념

세속적인 교육개념은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에 의한 것인 반면에 기독교교육의 개념은 성경에 근거한다. 복음주의 기독교 교육학자들의 교육개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랜돌프는 기독교교육을 성경에 근거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교수-학습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쥬크는 기독교교육이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안에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와 성경을 중심으로 하여 강단에서 시행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드종(N. Dejon)은 교육은 하난과 사람, 사람과 동료, 그리고 사람과 자연세상 사이에 참된 관계를 재창조하고 발달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파즈미노는 기독교교육은 기독교 신앙을 포함하고 있거나 그에 일치하는 지식, 가치관, 태도, 기술, 느낌과 행동을 전하기 위한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일련의 신적이며 인간적인 노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개념들과 더불어 기독교교육의 개념을 그 주체자의 관점에서 정의하자면 하나님과 동역하는 인간의 가르치는 사역이며 규범적인 측면에서는 기독교적 지식과 그 원리의 전수,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관의 전수이다. 이 책에서 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이러한 정의와 관점에서 사용됨을 전제한다.

기독교교육에 대한 정의와 개념도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플루드만(James E. Plueddemann)이 요약하고 있는 기독교교육에 대한 은유 중의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교육을 판매로 은유하는 것인데 이러한 은유는 학습결과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은유는 학습이 발생하지 아니하는 활동은 교육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을 함의한다. 이는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사는 일이 없으면 판매라는 것도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곧 교사의 활동이나 교수활동 그 자체의 본질보다는 학습의 결과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의 장점은 교육에 있어서 그 주체적인 요소의 하나인 학습자들의 반응에 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은유가 가지고 있는 단점은 보이는 결과만을 추구함으로써 사람들의 내면의 욕구에 대해서는 등한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교사가 한 반의 학습자들을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같은 기간 동안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학습자는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이해하고 나머지는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 교사가 일부의 학습자는 가르쳤고 나머지는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교육을 판매에 비유하는 것은 이러한 비합리성을 단점으로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는, 교육을 치료로 은유하는 것인데 이것은 개개인의 병의 증세가 다른 것처럼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다르므로 개별적으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은유에 있어서 교사는 전문적인 치료자인 의사이고 학습자는 치료의 대상으로 표현된다. 이 은유는 판매의 은유보다도 학습자들을 더 신중하게 대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은유가 판매의 은유보다 기독교교육에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이 은유는 교육의 대상인 학습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리고 개인차를 지닌 존재로 간주한다는 점인데, 그러나 여기에도 단점이 있다. , 치료를 함에 있어서 진단하고, 치료방법을 결정하고, 치료에 필요한 모든 일을 의사가 결정한다. 곧 교사가 자신을 전문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교육활동에서의 결정에 학습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지 않음으로써 학습자들은 수동적인 학습자가 된다. 그리고 치유에 있어서 한계가 분명치 않음으로 치료의 효과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로, 교육을 성장으로 은유하는 것인데 이것은 위의 판매의 은유치료의 은유에서 나타난 통제중심의 은유와는 대조되는 것이다. 야생화가 혼자 자라는 것과 같이 학습자들을 외부의 영향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혼자 둠으로써 그의 내면에 있는 자연적 발달성 곧 은사들이 마음껏 표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에서는 성장의 장애는 외적인 간여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간여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적인 뒷받침도 받고 있다. 이 은유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람이 사역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은유의 장점은 다른 은유에서는 학습달의 내적 가치를 무시하는 것에 비하여 여기서는 학습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가치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 은유의 단점은 학습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임을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동일한 사람이 죄악 되고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고려하다면 인간을 자연적으로 성장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의 악한 내적 본성이 나타나게 됨으로써 악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기독교교육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내용으로 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 곧 교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넷째로는, 교육을 판형또는 복제로 은유하는 것인데 이는 통제가 학습자와 교육과정에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의 근거는 사람들의 죄악된 본성과 성경의 권위이다. 이 은유가 함의 하는 것은 교육에는 배워야 할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목표를 학습자들이 알기 원하는 것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들이 알아야 할 것에 근거한다. 학습자들은 다만 완성되어야 할 원료들이다. 교사는 학습자들에게 지식이나 지혜를 주는 권위 있는 사람이다. 학습자들은 미숙하고 타락된 존재이므로 학습자들이 스스로가 자신들이 배울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학습자들이 배워야 할 내용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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