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이웃을 향한 사랑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5-09-28 12:57:32]  HIT : 218  

제목:이웃을 향한 사랑

본문:5:21-26

손종국 목사(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

 

수렵생활을 하는 부시맨들은 늘 독화살을 소지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부족 안에서 긴장감이 발생하면 그들은 독화살을 덤불에 숨겨놓고 협상이 끝날 때까지 모두 둥글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며칠이 걸리든 합의점을 찾거나 화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해결이 안 되면 냉정을 찾도록 누군가를 내보내 다른 친척들을 만나게 합니다.

말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친구를 향하여 어떠합니까?

 

 

1. 하나님의 사랑

 

복음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성경 모든 곳에서 다 발견할 수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천지창조 그리고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 십자가 사건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살펴보면 그 창조의 목적과 중심이 바로 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이 온 땅에 거하는 모든 것들을 다 우리를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가장 나중에 창조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엿새 동안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만드신 후 그 모든 것들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그처럼 열심히 만드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었고 그와 같으신 하나님의 최선을 다하신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있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표현은 '이처럼'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의 사랑은 없는 사랑,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5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 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 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39).

 

 

2. 하나님의 폭 넓은 사랑

 

하나님의 사랑과 연관되어서 우리가 생각하고 알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여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좋아하시고 사랑하시 지만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좋아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착각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신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내가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제와 잘못 그리고 약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도 그것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지 않으시고 싫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지 않으신다면 똑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사랑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는 의롭고 저는 불의해 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와 우리가 싫어하고 좋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똑 같으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도 사랑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 모두를 다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심판

 

하나님의 사람 사랑은 하나님에게 있으셔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십니다. 하나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며 그 위에 가장 큰 복을 내리십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18:5)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가장 싫어하시는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웃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못살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축복이 아니라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분명하신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살인만이 살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살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 형제에게 노하는 것, 형제를 깔보고 멸시하는 것, 형제에게 욕하고 저주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살인으로 간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관된 하나님의 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형제를 무시하고 깔보는 일에 심판하시겠다는 말씀과 소자 한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상주시고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은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조금만 사랑해도 복을 주시고 사람을 조금만 무시하고 못살게 하여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결론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외면의 형식과 결과에 치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을 완전케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와 정반대로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로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원색적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은 동물적 공격성을 자극합니다.

2) 남의 눈치를 보며 말합니다. 남의 눈 때문에 하고, 못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3) 사소한 결정도 본인 위주로 내립니다. 대화는 말이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 행위입니다.

4) 의견이나 신념을 나타내기 위해 단정적 표현을 합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견해도 다른데 내 의견을 일반화해서 단정적으로 통보하면 의견 충돌로 이어집니다.

5) 대화 중 스마트폰을 계속 들여다봅니다. 대화중에 스마트폰에 집중하면 상대는 무시당한다는 모욕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실수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을 무시하고 미워하며 상처를 주곤 합니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됩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내 뱉어진 말이 나를 다스립니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바른 응답이고 심판을 벗어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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