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아닌 사건(이야기)이 있는 교회와 교육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5-02-12 09:15:09]  HIT : 626  

사실이 아닌 사건(이야기)이 있는 교회와 교육
이명동 목사 | 의선교회


Ⅰ. 들어가는 말

작금에 ‘건강한 교회’에 대해서 교회 현장과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관심 또한 고조되고 있는 것을 본다. 필자는 ‘교회’라는 말 앞에 굳이 ‘건강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현상이 마음 아프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자체가 건강성을 가지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부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건강성은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이제는 교회의 건강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소통하는 교육’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소통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교육’ 그 자체에 이미 소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에 소통은 당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교회와 교육에 이처럼 ‘건강한’,‘소통’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와 교육이 본질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교회와 교육이 사실만 가지고 있지 사건(이야기)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Ⅱ. 사실이 아닌 사건(이야기)이 있는 교회와 교육

1. 사실이 아닌 사건(이야기)을 가진 교회

1) 구약의 교회

교회공동체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야기를 가진 공동체였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출애굽과 광야생활 및 가나안 정착 등은 단지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신 5:6)고 하신 것은 단지 사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부르실 때,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삭의 하나님,야곱의 하나님”(출 3:15)이라 하신 것도 단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다. 그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단지 사실로만 기억하고 있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다.

2) 오늘의 교회

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면,그것은 하나님과 맺어진 구원의 사실만 가지고 있을 뿐 이야기로서의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몇 명 모이고,성전의 규모가 어떠한지는 사실일 뿐이다.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본다. 선교와 사회봉사도 단지 사실로 나열하고 있다면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그것들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건강한 교회가 된다. 예배드린 사실은 있으나 예배를 통해 사건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기도와 찬송했다는 사실만 있고, 사건이 없다면 그 기도와 찬송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예배당을 나서는 성도들에게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건강한 교회다. 교회에서 ‘무엇’이 아닌, 세상에서 ‘무엇’이 되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그리스도인의 존재성이 교회 안에서만 있어서는 건강한 교회가 되지 못한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 5:1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고 하셨지,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능에 관한 말씀이다. 이미 소금과 빛이므로 그 기능을 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염도 와 조도이다.

3) 건강한 교회

건강한 교회는 목사와 성도,성도와 성도 간에 사실보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교회이다. 단지 같은 교회 성도라는 사실이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연합하여 동거할 때(시 133:1) 건강한 교회가 된다. 연합하지 않은 동거는 불편할 뿐이다. 같 이 있지만 함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성도들의 관계는 옛날 침대와 같아야 한다. 옛날 침대는 옆 사람의 움직임을 잘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는 과학의 발달로 옆 사람이 눕거나 일어나거나 해도 전혀 느낄 수 없는 침대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침대회사 중에는 볼링공을 떨어뜨려도 옆 사람에게 충격을 주지 않고,심지어 사람이 떨어져도 옆 사람에게 진동을 주지 않는 침대임을 광고한 회사가 있었다. 교회는 이런 침대와 같으면 안 된다. 교회는 옛날 침대와 같아야 한다. 그래서 옆 사람의 움직임을 곧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다. 이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필자는 성도들에게 목회서신(보고 싶은 지체들에게 띄우는 편지)을 23년 동안 쓰고 있으며,생일카드를 친필로 써서 보낸다. 예배 후에 목양실에서 식탁교제 형식으로 매주 한 가정씩 식사하면서 삶을 나눈다.

4) 건강한 교회를 위한 생명목회

(1) 치유사역을 통한 생명목회
치유에 대해 우리말 사전은 “의사의 치료를 받고 병이 나음(표준국어대사전)”이라 정의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전인으로 이해할 때는 불충분한 정의이다. 성서사전은 보다 자세하게 정의하는데 “치유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거나 건강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과 내용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사고(事故)로 인한 상처,외과적 질병 등을 낫게 하거나 육체 또는 정신의 특정한 병적상태를 효율적으로 치료하는 행위를 말한다” 라고 한다. 그러나 영적인 치유가 겸하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온전히 치 유되었다고 할 수 없다. 사람에게 질병이 생길 때나 그 질병이 치유될 때는 몸과 정신과 영은 상호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전인적인 치유가 행해 져야 한다. 영국이나 그리스는 예부터 병원과 교회가 같이 있어왔다. 구조상으로 교회 밖에 홀을 두어 환자를 수용했는데 이것은 영과 육의 질병에 대해 모두 돌봄을 얻게 하 는 것이었다. 즉 교회와 병원은 하나였고 같은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치유는 인간을 타락된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킴이 그 목표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 1:26). 이상과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치유를 정의해보면 “치유란 신체적, 정신적,사회적, 영적인 상태가 온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그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병을 치유하는 종교였다. 사람들은 에스클라피우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치유의 신)의 신전에 가듯이 교회에 갔으며 치유를 받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병든 자의 요구에 응하는 일을 당신의 사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여기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사람들을 치유하신 것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고쳐 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병은 영적인 병이었다. 그래서 병을 고친 다음에 죄의 용서를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죄사함을 받은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생명을 가진 상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일을 설교하고 교훈하는 일에 못지않게 중대한 책임으로 여겼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 전 5:23)고 하였다. 질병 치유는 교부들도 계속하였으며 저들은 이 목적을 위해서 기도, 안수,기름 붓는 일,그리고 성만찬까지도 이용하였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는 치유공동 체이다.

(2) 치유공동체로서의 의선교회
의선교회는 1981년 9월 13일에 28명의 의료인들이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ACTS) 내에 의료선교교회(Healing Mission Church)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다. 창립 동기는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ACTS)에 의료선교학과가 개설되면서 기독의료인들이 임상적으로 치유 선교사역을 지향하는 교회의 필요성을 공감한 까닭이었다. 중심인물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으며 ACTS의 초대 의료선교학과장인 이명수 장로와 차병원 설립자인 차경섭 장로였다. 의료선교교회 성격은 장로교헌법을 따르고 치유선교사역의 철학은 이명수 장로의 ‘치유선교론’(A Treatise on Healing Ministry)에서 말한 예수님의 3대 사역인 교육 • 전도 • 치유사역으로 하였다. 현재는 창립 33주년을 맞이하였으며, 700여 명의 성도들이 창립시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과 선하신 성품을 따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말씀을 깊이 있게 배우고,여러 모양으로 선교에 힘쓰며, 이웃을 섬기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의선교회는 설립 당시부터 생명목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참 생명은 사람을 치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데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치유사역에 힘쓰고 있다. 현재는 교회 이름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과 선하신 성품을 따라 공동체를 이룬다는 뜻에서 ‘의 선교회’로 개명했지만 그 정신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치유사역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교회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와 연합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셨듯이 의롭고 선한 일을 감당하는 공동체가 되고자 한다(요 10:11).

2. 소통을 위해 사실이 아닌 사건(이야기)을 교육

1) 관찰자에서 통찰자로

우리말 사전은 ‘관찰’을 정의하기를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 봄”이라 하고, ‘통찰’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이라 했다. 관찰이 그림 관람이라면 통찰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그림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관찰은 사물이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고, 통찰은 사물이나 사건 이면의 내용을 보고 읽으며 그것을 통해 전혀 다른 것을 깨닫는 능력이다. 따라서 교회교육 지도자들이 단지 성경의 사실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사건(이야기)을 가르치려면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소통하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지도자는 성경에 나타난 사실들을 통해 학습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가 학습자들에게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혀 끌려온 여자를 용서하셨습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학습자들에게 관찰하라는 것일 뿐이다. 통찰 있는 가르침은 ‘예수님은 간음을 용서했다기보다는 인간 자체를 용서하셨습니다!’라고 하거나, ‘우리는 그 여인처럼 붙잡혀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 행위가 그 여인처럼 드러난다면 우리도 모두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주님은 용서해주셨습니다!’라고 하며 학습자들이 통찰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예수님의 제자가 몇 명인지 알려면 관찰만 해도 된다. 하지만 그 제자들을 통해 내 삶의 모 습을 볼 수 있으려면 통찰해야 한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알려면 조금만 관찰하면 된다. 교회의 종류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교회의 진정한 속성을 알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학생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만 하지 말고 통찰해야 한다. 학습자의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듣고 볼 줄 알려면 관찰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 말과 행동 이면에 있는 언어와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으려면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소통이 되고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해를 가질 때 소통이 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관찰자는 보호자라기보다는 관리자라 할 수 있다. 교사나 부모가 학생들과 자녀들을 관리하면 학생들과 자녀들도 교사와 부모를 관리한다. 관찰자보다 나쁜 자는 방관자인데 놀라운 것은 교사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서는 학습자들에 대한 정보만 가질 수 있지만, 통찰을 통해서는 학습자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2) 소통을 위한 통찰교육의 실제

필자 교회는 성도들이 성경말씀을 통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버블리오드라마를 시행하고 있다. 담임목사가 각 소그룹을 방문하여 진행하였으며, 교회 정원인 예뜰에서는 한 소그룹씩 성경에 나타난 사건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을 실시한 바 있다. 특별히 청년부에서는 비블리오드라마를 성경교육의 중요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3) 소통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L.K.S.D 창

L.K.S.D 창은 필자의 논문에 나타난 상담기법을 설명한 것인데,관계와 소통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소개한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에 상대에 대한 자기 창을 가지고 있다. 그 창이 왜곡 되어 있으면 상대와 불통하고,온전하면 소통할 것이다. 이 창은 목회자와 성도, 교사와 학습자 간 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이 창이 온전하면 건강한 교회가 되고, 소통하는 교육이 될 것이다.

(1) 소통의 역동성
IBB
(2) 이상적 소통의 상태

(3) 기형적


(4) 결핍형 소통의 상태들

 

 

 


Ⅲ. 나가는 말

어떤 접근방법으로 주제를 고찰하더라도 결과는 원론으로 귀결된다. 즉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잃지 않으면 건강한 교회가 된다. 교회교육 또한 교육의 참된 정신을 잃지 않으면 소통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는 소통하는 교회요, 소통하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다’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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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용만.『의료선교교회창립10주년기념집』. 서울:의료선교교회,1991.
2) 이명동. “치유과정에 있어서 몸과 마음과 영의 상호작용”. 석사학위논문,아세아연합 신학대학원, 1990..
3) 이명동. 『그림상담책(Biblical Counseling』,고양:의선교회,2007.
4) Lee, Myoung Dong. “A Small Group Ministry Through Biblical Counseling Education” D.Min. Project,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2008.

2015년 교회교육 설계를 의한 교회교육 정책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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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건강한 교회를 위한 소통교육
     8. 좋은 교회를 넘어 바른 교회를 꿈꾸는 건강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