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역의 목표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4-06-25 00:49:59]  HIT : 304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청소년 사역의 목표

 

존과 로레인이 나의 사무실로 와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털어 놓았다. 그들은 어느 외곽 교회의 청소년 지도자들로서 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교육 문제와 더불어 각기 다른 기대들을 갖고 있는 것 같은 교회 지도자들의 비난에 대해 매주 프로그램들을 어떤 식으로 맞춰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여러분들이 이 청소년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목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존과 로레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이루려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은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자신들이 제기 하고 있는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한 목표가 부족한 탓에 비판과 잘못된 행동을 초래한다. 반면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그 일에 적절한 자료들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우리의 첫번째 문제는 우리의 생각에 있다.

존과 로레인 같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청소년 사역에 깊이 헌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교회 지도자들, 계획과 자료들의 부족 등으로 오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의 생각에 있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새로운 계획과 게임과 아이디어들을 찾고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는 계속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분명한 목표가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 생기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목표들은 문제들을 다루고 우리가 방향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불문명한 목표들

 

청소년 사역의 성경적인 목표를 생각하기에 앞서 청소년 지도자들이 대게(종종 무의식적으로)품고 있는 세 가지 부적절한 목표들을 생각해 보자.

 

1. 아기 보기형(babysitting syndrome) - 묶어 두는 형

 

여기에서 청소년 지도자들은 아기를 돌보는 사람으로 비쳐지고, 사역의 목표는 청소년들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일정한 친교의 틀 속에 묶어 두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목표들 가운데 하나이며, 다음과 같은 여러 형태를 띨 수 있다.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다른 교회에 가거나 교회 내의 다른 부서로 가지 않도록 우리 팀에 묶어 둔다.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다니지 않도록 혹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우리 교회에 묶어 둔다. 그들이 우리의 통제권 안에서만 즐기도록 한다. (우리가 때때로 일어날 수도 있는 특정한 일에 대한 대안을 결코 내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장기 목표로는 부적당하다.)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책임 있는 일을 맡기지 기독교 신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불안정한 청소년 단계를 넘어설 때까지 우리의 교제권 안에 묶어 둔다.

 

이 목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청소년들을 묶어 두는 데 목표를 둔 지도자들은 대개 헌신된 청소년들을 회생시키고 쉽게 떠나 버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다음의 네 가지 쟁점들이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1) 복음은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다. 복음은 반드시 수용되거나 거부된다. 중립 지대는 없다. 복음을 거절하는 청소년들은 단지 복음이 선포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떠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서 우리와 함께 있도록 해야 하지만, 그들이 떠나더라도 놀라서는 안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맞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할 때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떠날 때 우리 자신과 프로그램에 잘못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고 프로그램을 적당히 진행시킨다면, 그들은 어쨌든 떠날 것이고 우리는 모임 속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세우는 일에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대개 붙잡아 두려는 목표들은 복음의 시급한 요구들로부터 우리를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 부자 관원처럼 예수님의 존재를 깨다E고는 떠나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도록 내버려 두셨다. 복음을 들을 때에는 아니오라고 대답해야만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하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떠날 것이다.

청소년들을 끌려는 목적으로 행사를 계획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붙드는 것과 접촉하는 것 사이에는 전적인 차이가 있다. 복음을 접해 보지 못한 청소년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기 위해 프로그램을 바꾸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2) 여러분이 연출하는 이미지. 여러분이 청소년들을 끄기 위해 프로그램을 희석시킨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도 호소력이 없는 복음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트 클럽을 원하는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청소년 모임이 아무리 그 형태를 달리하더라도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길을 찾고 있는 비그리스도인과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붙잡아 두려는 목표는 여러분이 프로그램을 불모의 땅으로 전락시킨다. 헌신을 요하지 않는 일에 헌신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3) 사람들로부터의 압력. 필자가 한때 지도했던 청소년 프로그램 가운데 80명의 청소년들을 모은 성경공부반이 있었다. 나는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성경공부를 없애야 한다고 요구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가 사람들을 붙잡는 것이라면 그러한 압력을 견딘다는 것이 어렵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출석 이상을 포함하는 목표를 필요로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압력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밀려다니게 될 것이다.

 

(4) 청소년들의 성장 과정, 청소년들은 성장해 가면서 청소년 모임을 졸업하게 될 것이다. 바라는 대로 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키워 주고 양육시켜 줄 또 다른 맥락의 기독교 친교 모임(아마도 좀 더 나이 든 청소년 모임이나 성인 모임)으로 옮겨 갈 것이다. 청소년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모임 속에만 청소년들을 잡아 놓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막게 된다.

 

청소년들을 붙잡아 두는 모임

청소년 사역의 목표는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 나가면 그들의 호감을 끌 것이고 따라서 붙잡아 둘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적어도 교회를 떠난다거나 나이트 클럽에 다니는 것과 같은 경향은 좀 덜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효율적인 청소년 모임은 대개 사람들을 붙들게 되겠지만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반면에 청소년들을 붙잡아 두려는 목적을 가진 지도자들은 거의 효과를 볼 수가 없고, 그들을 붙잡아 두는 사역을 도저히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2. 프로그램형(Program Syndrome)

 

이 목표는 단순히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이 모임에 나오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성장시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점은 활동 그 자체에 있다.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출석하면서 계획대로 잘 움직이는 한 모든 것이 좋다. 어떤 경우에 이 목표는 기대감들에서 나온다. 교회들은 청소년 프로그램들을 비교하면서 자기 교회에 청소년 프로그램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당황해 한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그 프로그램들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청소년 모임을 시작하거나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교회의 한 모임에서 청소년 모임을 시작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나를 찾아 왔다. 우리가 그 지역을 조사했을 때 사실 그곳에는 청소년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지역을 노인들과 나이가 어린 사람들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이 청소년 사역을 포기하고 젊은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기뻤다. 대화를 해 나가는 가운데 그들이 처음 청소년 모임을 원했던 이유는 주위의 교회들이 적어도 그런 것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고, 자기들의 교회가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 이상한 교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때로 너무나 프로그램 위주로 빠지기 쉽기 때문에 자칫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목표들이 프로그램의 어떤 독특한 면에 초점을 둘 수 있다. 가령 어떤 이들은 출석에 초점을 맞추고 청소년들을 더 많이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어떤 이들은 프로그램의 성격에 초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좀 더 매끄럽게 진행하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부차적인 이유로는 괜찮지만, 그것이 우리가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라면 우리는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키우는 일은 거의 하지 못하고 그저 출석률을 좋게 하고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 가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3. 방법 고수형(Method Syndrome)

 

프로그램의 운영 그 자체에 매달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방법을 유지하는 데 목표를 두기도 한다. 어떤 이들의 실제 목표는 청소년 사역의 특정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역하는 사람은 그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의 영적, 정신적 가치를 쉽사리 간과할 수 있다. 청소년 집회나 클럽, 커피 숍, 캠페인 프로그램, 이 모든 것들이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옛 방식들이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좀 더 효과적인 방법들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때조차 방법을 바꾸지 못하고 만다. 목표는 청소년을 위한 사역이 아니라 특정 방법을 선전하게 되거나 보호하는 차원에 머물러 왔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누군가 몇 년 동안 효과를 보아 온 독특한 청소년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출석률이 점차 떨어지고 지도자들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교회는 지원 부족 문제로 술렁이게 되고, 담당자들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도록 열심히 로비 활동을 벌인다. 모든 일에 있어서 퇴보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최자들은 자신들의 방법들이 더 이상 부적절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그들의 실수를 합리화시킬 것이고, 청소년들이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만 한다. 자신들의 방법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심지어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청소년 사역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향해 반대를 표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청소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원하고 그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자신들의 방법을 통해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하다.

방법이 조직화될수록 이러한 위험은 더욱 커진다. 위원회, 안내서, 회원 자격, 제복, 심사, 깃발과 같은 외형상의 모습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방법이 목표가 될 가능성은 더욱 짙어진다. 사람들은 그 방법을 시행하 나가면서 기득권을 가지게 되고 더욱 자기 입장을 굳혀 가게 된다.

어떤 방법들이 과거에 더욱 효과를 거두었을수록 방법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은 현재를 위한 사역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재생산하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그들이 젊을 때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적으로 성장했던 프로그램의 형태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그들이 지도자가 될 때 그들은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자신들이 과거에 겪었던 것들을 경험하도록 옛날 방식들에 매달리게 된다.

한 가지 방법에 매달림

방법 자체가 목표가 될 때, 여러분은 한 가지 특별한 접근 방법에 갇히게 된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청소년들이 변화함에 따라 여러분은 그것에 맞게 적응할 수가 없게 되고 비효율적인 방법에 발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효과적이든 아니든 기본적인 프로그램 형태는 유지되어야 한다. 커피 숍이라든가 청소년 클럽 같은 것들은 계속 운영해 나가야 한다!

스패너(나사 따위를 죄거나 풀 때 사용하는 연장)와 망치는 서로 다른 일에 사용된다. 그것처럼 청소년 사역에 있어서 우리는 당면한 과제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고 나서는 그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제라는 것은 캠프나, 커피숍, 청소년 클럽 등을 운영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제란 바로 청소년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사실 방법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이 되는 연장 역할을 할 뿐이다.

어떤 방법이 우리의 계획에 가장 적절하며, 언제 다른 방법으로 바꿔야 할지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방법이 항상 모든 청소년들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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