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프린트   
손종국  Homepage Email [2014-06-14 01:37:22]  HIT : 478  

일본 북해도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여기서는 섣달 그믐이면 12시가 되기 전에 우동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이 북해도에북해정이라는 우동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동을 먹고 12시가 다 되어 문을 닫으려는데 한 젊은 여자가 여섯 살과 열 살쯤 된 두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난로 곁에도 가지 못하고 쭈삣쭈삣하면서 말을 못하다가 한참만에 ,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되겠습니까?”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여주인이 가만히 보니 세 사람이 와서 한 사람 분을 시키려니 미안해서 말을 못하는 줄 알고는 어서 오십시오라며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안에 대고 남편에서 우동 한 그릇이라고 큰 소리를 외치고는 일 인분에다 반 사람 분을 더 얹어 국물을 가득 담아서 가져다주었다.

그러자 셋이서는 젓가락에 국수를 둘둘 말아서 서로 입에 넣어주며 맛있지?” “그래 맛있다하면서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아주 맛있게 먹고 나갔다. 주인 부부는 그들 등뒤에 대고 안녕히 가십시오. 내년에 다시 오십시오하고 인사를 하였다.

일년이 지난 뒤에 북해정이 문을 막 닫으려는데 이 세 사람이 또 왔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역시 쭈삣거리며 들어와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되느냐고 물었다. 안주인은 안에 대고 우동 한 그릇이라고 외치자 남편이 3인분을 말겠다고 신호를 하였는데 아내는 눈치챌지 모르니까 2인분만 말자고 했다. 역시 이 세 식구는 젓가락에 우동을 둘둘 말아서 서로 먹여주며 맛있지?” 하고 이야기하며 먹었다.

3년째 되는 해에 이 주인들은 물가인상으로 인해 200엔으로 오른 국수 값을 150엔으로 다시 고쳐 쓰고는 이 세 식구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찾아왔고 그날은 형편이 나아졌는지 2인분을 시켰는데 주인은 두 그릇에 1.5인분씩을 말아주었다.

국수를 먹으며 엄마가 말을 하였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할 얘기가 있다. 실은 말이야, 돌아가신 아버지가 낸 교통사고 있지 않니, 그 때문에 여덟 사람이 다쳤거든. 보험만으로 피해보상을 다 할 수 없어서 엄마가 다달이 갚아오면서 내년 3월까지 갚아야 했는데 이 달에 다 갚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큰아들을 향해 넌 신문배달까지 했고 동생은 심부름과 저녁준비를 도와주는 덕분에 엄마가 안심하고 회사에서 일을 해서 특별수당을 받아 다 갚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큰아들이 저희들도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은 동생이 글짓기 1등으로 뽑혔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글짓기 발표회에 참석해 달라는 편지가 왔어요. 엄마에게 말씀을 드리면 회사를 쉬시게 될까봐 제가 대신 갔지요. 글짓기 내용이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였는데 제가 들어보니 글짓기 제목이우동 한 그릇이었어요. 그 순간 저 녀석이 그 창피한 일을 썼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동생은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섣달 그믐날 셋이서 먹는 우동 한 그릇은 정말 맛있었다. 아빠의 교통사고 때문이지만 세 사람이 한 그릇만 주문해도 가겟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선뜻 들어주시고 가게문을 나서면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 소리로 인사까지 해주신다. 그 아저씨와 아줌마의 목소리는 나에게는 꺾이지 말아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하고 응원하는 소리같이 들인다. 나도 크면 형편이 어려운 손님에게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주는 우동집 주인이 되어야겠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주인들은 안에서 수건의 양끝을 한쪽씩 잡고 눈물을 닦았다. 이 세 모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갔다.

선생님이 동생의 엄마 대신 형이 이 자리에 나와 있다고 하시면서 인사말을 하라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와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주어서 고맙습니다. 동생이 매일 저녁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클럽활동에서 먼저 빠져 나와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을 읽어 가는 동안 우동 한 그릇을 부끄러워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을 시킬 수 있었던 엄마의 용기를 나는 잊어버리지 않겠습니다. 동생과 함께 언제까지나 엄마를 보호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북해정 주인들은 이 손님들을 기다렸지만 섣달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음식점이 번창해도, 3년을 계속해서 이 삐거덕거리는 의자와 테이블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자 사람들이 물어보면 우동 한 그릇을 이야기하면서행운의 자리라고 손님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이 행운의 자리도 잊혀진 어느 섣달 그믐날, 초로의 한 여인이 건장한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우동 세 그릇을 시켰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음성을 기억한 주인은 그들을행운의 자리로 안내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우동 한 그릇을 썼던 막내는 은행원이 되었고 신문배달을 하던 큰아들은 의사가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옛 생각을 하면서 이 북해정에 우동을 먹으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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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모역할과 자녀지도 1